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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법과 실증법의 질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부산 미국문화원사건 수사과정 보도에서 한국가톨릭소속의 성직자들이 자주 등장하게 됨으로써 사회에 적지않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것은 문부식군과 김은숙양의 자수를 중재한 것이 가톨릭신부였고 또 문의·배후조종 인물로 알려진 김현장피의자가 오랜기간 강사로 근무해온곳이 바로 가톨릭 원주교구청 교육원인 때문이다.
이번 일로 가톨릭의 입장이 다소 미묘해진 인상도 없지는 않지만, 어떻든 결과적으로는 사회적 물의와 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충격적 사건이 해결되었다는 점은 오히려 다행이라 하겠다.
사건의 내용으로 보아 자칫 빗나갔으면 국가권력과 교회권의 심각한 마찰을 불려 일으킬 소지마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교회는 그런 우려를 씻기위해 범죄피의자의 「자수」에 훌륭한 조정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현명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 가톨릭의 한 고위성직자가 실정법(실증법) 과 교회법사이의 문제는 양식의 판단으로 조화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것은 적절한 표현같다.
이미 역사에 있어서 「단테」와 「존·로크」가 국가와 교회의 분리를 주장했던 정신은 지금도 존중되고 있다. 국가는 순전히 인간의 세속적 문제를 다루기 위해 세워지며 법과 권력으로 유지된다. 이에 반해 교회는 인간의 영혼구원에 봉사하며 구성원의 자발적 신앙에 의해서만 유지된다는 입장이다.
그런 분리론위에서도 물론 실정법과 교회법의 마찰이 절대로 없으리란 보장은 없다.
왜냐하면 교회법이 『모든 교회를 성역으로 보며, 그곳을 은신처로 제공할 권리』를 주장할 때 현실적으로 실정법이 수수방관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우기 국가변란이나 방화·살인과 같은 중대범죄는 사회적으로도 가장 신랄한 비판을 받고 있고 실정법의 핵심을 이루고있는 부분이다.
또 이를 위반한 범인을 교회가 은닉한다든지 보호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용납될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교회법도 사회공익과 사회정의를 지키는데 결코 사회공법에 뒤지지 않으며 실정법과 모순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교회법은 실정법의 「윤리적합당성」에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실정법이 단순히 「극악한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해도 교회가 범법자를 「양심범」으로 확신할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성직자는 그를 대신한 희생까지도 떳떳이 감수할 경우도 없지않다.
「양심」은 인간본성에 뿌리박은 행위의 원리다. 그것은 국가의 법령에 구현되건 않건 관계하지않는 자연적도덕의 법칙이다.
그것은 신학적으로는 『인문성의 창조자가 인간 이성속에 심어준 것』이다. 그러니까 신은 자연적 도덕법칙의 제정자다.
그런 의미에서는 교회는 양심을 실정법보다 중시한다고 할수있다.
따라서 교회가 양심범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교회의 실무라는 주장도 나온다.
문제는 현실이다. 하나의 범죄피의자를 양심범으로 보는가, 단순한 방화·살인범으로 보는가는 어디까지나 상황과 사례에 따르며 성직자 당사자의 양식있는 판단에 달린 것이다.
더우기 범죄피의자가 교회의 그런 입장을 「이용」하고있는 양심범을 가장한 반국가집단동조자로 볼수 있는지, 없는지도 성직자 자신은 양식으로 분별할 일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설혹 양심범이라해도 현세에서의 그의 「범행」에 대한 책임까지 면할수는 없다는 것이다. 자기의 행동에 대한 책임은 모든법에 필수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톨릭교회가 일단 실정법을 위반한 범인을 자수형식으로 경찰에 넘긴것은 적절한 선택이라고 하겠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밝혀진 움직일수 없는 사실은 그가 실정법의 위반자라는 것때문이다.
따라서 교회법과 실정법은 결국 현실에 있어서 대립과 길항(길항)의 긴장된 관계보다는 조화와 이해의 관계로 유지되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한 것이다.
현실적으로 종교는 있고 국가가 없다면, 그 반대의 상황, 곧 국가만 있고 종교는 없는 상황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현실적 삶은 고통스럽고 곤난한 일이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한편 범죄피의자가 일단 교회를 떠나서 국가법의 관리자인 경찰로 넘겨진 이상 교회와 교회법에 대해서 더이상 불필요한 논란을 거듭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화합을 위해 무슨 도움이 될지 생각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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