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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해야 할 거품경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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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올해도 이제 하반기에 접어들었지만 세계 경제의 흐름이 영 심상치 않다.

갈 곳을 잃은 자금들이 마땅한 투자대상을 찾지 못한 채 세계 시장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가운데 국제유가는 투기수요까지 겹치면서 연일 사상 최고치를 넘어서고 있다.

우리나라에 주로 수입되는 중동산 두바이유는 지난해 말 연평균 배럴당 30~40달러대에서 계속 급등세를 보이더니 이달 들어서는 50달러선을 훌쩍 넘어섰다. 하반기 중에 국제유가가 100달러를 넘어설 것이라는 경고마저 잇따르고 있다.

그동안 잠잠하던 세계의 부동산 시장도 불안한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조차 "일부 지역의 집값이 더 이상 올라가기 힘들 정도로 올랐다"고 지적할 정도다.

고유가가 지속되는 가운데 치솟던 집값이 어느 날 갑자기 폭락하면서 부동산 담보의 가치 하락으로 금융사들이 연쇄 위기에 빠지고 장기 불황으로 이어진다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나오고 있다.

유엔마저 30일 발표한 세계경제동향보고서에서 고유가와 주택 가격 거품 등을 세계 경제의 당면 리스크로 지적하며, "세계 경제의 성장률이 지난해 4.1%에서 올해엔 3.25%로 떨어져 성장 모멘텀을 상실할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사정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연초 주가 1000 돌파에 흥분하며 경기회복이 멀지 않았다던 전망은 어느덧 사라지고 올 4% 경제성장률 달성도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평당 1억원짜리 재건축 아파트, 10억원을 웃도는 골프장 회원권이 등장하고 땅값이 계속 치솟으면서 물가는 물가대로 오르고 경기는 더 어려워지는 거품형 스태그플레이션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의 대응도 그리 미덥지만은 않다. 거품이 아니라는 소리만 가득하다.

한국 경제의 조타수인 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30일 "일본식 불황은 미흡한 개혁 때문"이라며 "이 같은 불황은 한국에 절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위기론을 반박했다. 이미 저금리의 부작용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데도 한국은행은 경기회복론에 발목 잡혀 금리인상 카드를 만지작거리기만 한 채 미적거리고 있다.

공급을 늘려 시장의 불균형을 해소하기보다는 세제정책에만 매달린 부동산 대책을 걱정하는 사람도 많다.

정부가 30일 발표한 고유가 대책만 보더라도 "좀 더 지켜보고 유가가 더 오르면 대응책을 마련하겠다"는 하나마나 한 이야기뿐이다.

확실한 비상대책(컨틴전시 플랜) 기준을 제시하고, 사전에 수위별로 수요 억제대책을 준비해 놓아야 '고통'의 분담이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정부가 머뭇거리며 눈치를 보면 기업과 국민은 더욱 불안해질 뿐이다.

한국과 달리 세계는 이미 고유가와 부동산 거품붕괴에 대비한 선제적 대응에 나서고 있다. 미국 FRB는 지난해 6월부터 꾸준히 금리를 인상하며 시장에 경계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으며, 일본은 진작부터 에너지 장기조달 비상계획을 가동하고 있다.

정책은 내용 못지않게 타이밍이 중요하다. 1983년부터 9년을 끌었던 부동산 거품이 때늦은 금리인상 등으로 갑자기 꺼지면서 10여 년의 장기불황으로 이어졌던 일본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북핵 이야기만 나와도 한국 경제가 크게 흔들리는 판에 세계적인 동시 불황이 쓰나미처럼 한국에 몰아칠 땐 속수무책으로 휩쓸려갈 수 있다.

거품은 언젠가 터지게 마련이다. 거품이 오지 않는다고만 외치기 전에 거품이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곁에 다가와 있는 것이 아닌지 다시 한번 고민해야 할 때다.

홍병기 경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