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권리」앞세워 과잉 보도 많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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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한국신문들은 보도 활동을 하면서 얼마나 시민들의 권익이나 명예를 침해하고 있는가?
언론중재위원회가 30일 창립 l주년을 맞아 세종문화회관에서 연 「언론보도와 시민의 권익」이라는 주제의 토론회에서 김동철 이대 교수는 『우리 나라의 신문보도로 시민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한 사례는 허다하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그 사례를 열거하고 옴부츠만 제도의 도입, 자율규제의 강화 등을 대응책으로 내놓았다. 신문주간을 맞아 김 교수의 주제 발표 내용을 요약해 싣는다.
◇대표적인 권리침해사례 ▲양정모씨에 대한 오보사건=이는 81년 4윌4일 어느 조간신문에 『몬트리올 올림픽 레슬링 금메달리스트인 양정모씨가 대마초를 피우고 절도를 한 혐의로 구속되었다….』는 보도로 취재기자가 동명이인인 법인의 주장만을 그대로 믿고 기사화 한 것이다.
이 신문은 다음날 같은 자리에 같은 단수의 크기로 「내 이름을 파는 가짜 다시없길」이라는 표제를 붙여 사실이 아님을 간접적으로 보도했다. 이 후속기사는 또 하나의 사실기사로서 독자들은 나름대로 추측을 해야만 전날의 기사가 오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오보임을 솔직히 밝히지 않은 점은 워싱턴포스트지가 「지미의 세계」보도에 대한 솔직한 사과보도를 한 것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윤경화 노파 일가족 피살사건=이 사건을 둘러싸고 고 여인에 대한 수사기관의 인권유린과 고 여인의 「범행」에 대한 언론기관의 보도와 관련된 인권침해 문제가 세인의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l번에서 무죄가 선고되었는데 신문들은 그때까지 수사기관의 발표를 그대로 믿고 무고한 사람을 범인으로 만드는 인권침해를 했다.
이 사건에서 신문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가. 한편으로는 언론매체가 이 사건을 보도함으로써 대중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주고 비밀수사로 빚어질 수사의 맹점을 지적비판하고 공판과정과 판결을 분석보도 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진실을 종합적으로 파악하도록 도움을 주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신문이 관계인들에게 명예훼손을 저질렀다해도 그것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임이 명백하기 때문에 위법성은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경찰의 수사과정을 지나치게 소상하게, 때로는 앞질러 보도함으로써 「용의자」를 「진범」으로 오인케 하는 기사들이 있었다.
신문들이 수사과정에서 지나치게 많은 지면을 할애한 점, 자극적인 제목들을 많이 쓴 점, 현장사진 설명이 마치 고 여인을 진범인양 오인케 한 점, 수사기관의 사후 검증을 너무 소홀히 다룬 점 등을 반성해야 한다.
▲박상은양 피살사건=신문이 처음 범인으로 지목된 장군과 그 가족 및 관계인 들에게 큰 피해를 준 것은 물론 피살된 박양을 흥미위주의 과잉보도와 저열한 표현으로 보도함으로써 유가족들에게도 피해를 주었다.
이 사건도 윤 노파 사건과 같이 장군을 진범인양 오인케 하는 과잉보도로 명예를 훼손시켰다.
신문이 사회적 관심사의 대상인물을 보도했다는 점에서는 명예훼손의 법률적 책임의 문제가 될 수 없을는지 모르나 장군과 그 가족들의 권리침해가 막대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도의적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사건보도에 있어서는 피고인이 유죄판결을 받을 때까지는 무죄라는 원칙을 엄수해야 한다. 이점 신문들의 자기성찰이 요구된다.
▲물리학자 김모 교수 실종사건=78년 김씨가 실종된 지 40여일 만에 발견되기까지 도하 각 신문들은 김 교수의 애정관계·정신질환 경력 등 사생활의 비밀을 소상히 보도했다.
이 사건은 「공공의 이익에 관련되지 않는 한 개인의 사생활은 보도 또는 평론해서는 안 된다」는 한국신문윤리 실천요강을 명백히 위배한 사건이다.
◇개선방안=위에서 본바와 같이 신문보도가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고 권리를 침해한 사례가 적지 않다. 특히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사건일수록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신문보도에 의한 인권침해의 구체적인 유형은 △허위보도 △과장·왜곡보도 △미확인보도 △수사기관의 발표를 과신한 부당 보도 △흥미위주의 선정적 보도, 저열한 표현 보도 △사생활 폭로보도 △미성년 피의자 또는 봉욕한 부녀자의 주소·성명·사진의 공개 △사건과 무관한 가족의 성명 공개 등으로 분류된다.
이것을 권리 유형별로 보면 △개인이나 집단의 명예나 신용훼손 △프라이버시침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의 침해 △저작권의 침해 △소년법·가사 심판법 심리대상자 보호원칙위반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신문이 새로 입건 또는 기소된 사건은 크게 그리고 연일 보도하는 반면 후에 무죄판결을 받은 것은 아예 보도하지 않거나 한다해도 가볍게 보도하는데 따른 명예훼손 또한 막대하다.
신문에 의한 이 같은 인권침해를 줄이려면 신문인 스스로의 높은 윤리의식과 직업정신을 갖춰야 한다.
특히 신문사별로 내부적으로 옴부츠만 제도를 두어 자가 비판을 하거나 자사지면을 통해 이를 공표하는 방법을 도입함으로써 질적 향상을 기하도록 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또 신문이 자발적으로 구성한 신문윤리위원회의 기구를 통해 자율적 규제를 엄격히 실시해야 한다. 이런 기구는 어디까지나 자율적인 기구이어야 하고 어떠한 입법조치를 통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게 대부분 언론인의 기본철학이다. 입법조치에 의한다면 자율적인 성격이 흐려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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