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학순, 제15차 남북장관급회담 평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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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차 남북장관급회담이 2005년 6월 21일부터 24일까지 서울에서 진행되었다. 회담은 “쌍방은 6.15 남북공동선언 발표 이후 5년 동안 남북 사이에 이룩된 성과를 평가하고, 공동선언의 기본정신인 우리 민족끼리의 정신에 따라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도모하기로 하고” 12개항에 합의하였다.

합의 내용은 8.15 남북공동행사에 북한 당국대표단 파견,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실질적인 조치, 이산가족 상봉 및 적십자회담을 통한 6.25전쟁 시기 생사를 알 수 없게 된 사람들의 생사확인, 을사5조약의 원천무효 확인, 북관대첩비 반환 및 안중근 의사의 공동 유해발굴, 남북 군사회담, 서해 평화정착, 남북 농업협력, 북측 민간선박들의 제주해협 통과, 대북 식량지원, 남북 경협, 제16차 및 제17차 장관급회담 개최 등의 문제에 관한 것이다.

이번 합의는 안팎으로는 남북관계와 대외관계에 해당하는 문제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분야별로는 정치·외교·안보·군사·경제·역사·인도주의 부문을 총망라하고 있다.

이번 남북장관급회담에서 이룩한 합의는 지난 6월 17일 정동영 특사의 김정일 위원장 면담을 계기로 확인된 양측의 남북관계 ‘전면적 회복’ 의지가 이번 회담에서 구체적 결실을 맺은 것으로서, 그 성과는 김대중 대통령 시절 2002년 4월 5일 임동원 특사가 평양방문을 통해 “남북관계를 원상회복”하기로 한 후 개최된 일련의 남북장관급회담에서 이룩한 성과에 비견할 만한 획기적인 것이다.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실질적인 조치”를 취해 나가기로 한 것, “전쟁시기 생사를 알 수 없게 된 사람들”, 즉, 국군포로와 남북자들의 생사확인에 대한 합의, 차차기 남북장관급회담의 구체적인 시기 합의를 통한 ‘장관급회담의 정례화’ 노력은 기존의 남북관계의 전면적 회복을 뛰어 넘는 귀중한 성과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남북장관급회담이 이룬 성과와 그 실천에 대한 기대는 이미 결정된 각종 합의 이행 날짜들만 보아도 충분하다. 오는 7월 중에는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 제10차 회의, 이산가족 화상상봉 관련 실무접촉, 남북농업협력위원회 제1차 회의, 8.15 남북공동행사 당국대표단 파견 관련 실무접촉, 남북수산협력 실무협의회, 금강산 면회소 측량 및 지질조사 완료가 예정되어 있고, 8월에는 제6차 적십자회담, 8.15 남북공동행사, 이산가족 화상상봉, 제11차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 면회소 착공, 9월에는 제16차 장관급회담, 그리고 12월에는 제17차 장관급회담이 예정되어 있다. 단지 백두산에서 개최될 제3차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만 날짜가 정해지지 않고 그 구체적인 날짜는 쌍방 군사 당국이 직접 정하기로 하였으나, 특별한 일이 없다면 군사회담도 올해 안에 열릴 것으로 생각된다.

관점에 따라서 혹자는 이번 남북장관급회담 공동보도문에서 “우리 민족끼리의 정신”이라는 문구의 수용, 북한의 농업을 돕기 위한 “남북농업협력위원회의 구성·운영”에 대한 합의, 그리고 “북측 민간선박들의 제주해협 통과”에 대한 합의에 대해 우려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민족끼리의 정신”이라는 표현은 기본적으로 ‘한반도문제와 남북문제 등을 같은 민족인 남북한간에 협력을 통해 주도적으로 해결하자’는 ‘남북협력의 정신’을 나타내는 문구로 받아들이면 될 것이다. “우리 민족끼리”라는 표현은 이미 2002년 4월의 특사관련 공동보도문에서 “쌍방은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나라의 통일문제를 자주적으로 풀어 나가기 위한 공동선언의 합의 사항에 따라”라는 표현에서, 보다 근본적으로는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에서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라는 표현에서 이미 쓰이고 있다.

북한의 농업을 돕기 위한 “남북농업협력위원회의 구성·운영”에 대한 합의는 우리가 당장 북녘 동포들의 ‘먹는 문제’와 복지를 책임질 수 없는 상황에서 북한의 농업생산 증가를 도와주면서 동시에 우리가 원하는 식으로 북한의 농업개혁을 유도할 수 있는 중요한 지렛대를 마련해 줄 것이다.

“북측 민간선박들의 제주해협 통과”에 대한 합의는 제주해협이 제3국 선박의 ‘무해통항권’이 인정된 지역으로 북측 선박에 대해 국제적 기준을 적용하여 동등한 권리를 인정하는 것에 불과하며, 제주해협 통과허용은 오히려 서해상의 남북 어업협력과 더불어 해상에서의 평화정착에 공헌할 것으로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이번 남북장관급회담은 남북관계에서 ‘제2의 6.15 남북협력의 시대’의 개막을 알리고 있음에 틀림없으나, 이러한 성과가 더 큰 성과로 이어지고 북핵문제가 해결되어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고 민족의 번영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이번 6월에 이룩한 성과를 남북정상회담의 개최로 이어가지 않으면 아니 된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바이다.

백학순(세종연구소 남북한관계연구실장, 북한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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