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 김광일<한양대병원 신경정신과장>(238)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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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수사기관으로 부터 감시와 미행을 당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초긴장 상태에서 지내는 젊은이들이 간혹있다.
집 주변에, 학교안에, 그리고 자기가 가는 곳마다 수상쩍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분명 수사기관원이고 자기를 어떤 목적 때문에, 혹은 오해로 인해서 감시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자기방 구석 어딘가에 도청장치가 있어 자기 언행이 일일이 기록되고 고도의 과학적 장치를 통해서 자기 행동과 기분과 생각이 조정당하고 있다고 분개를 한다.
언뜻 이런 얘기만 들어서는 정신이상이라고 의심하기가 힘들다. 잘못이 있으면 감시당하는 것이 당연하고, 때로는 오해로, 때로는 예방적인 의미로도 감시당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환자는 이 때에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 그것은 망상형 정신분열증의 초기증세이기 때문이다.
수사기관으로부터 감시 당한다는 생각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고 신경이 낱카로와서 쉽게 흥분하고 싸우기도 한다. 수사기관을 찾아가 항의하기도 하고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왜 나를 못살게 구는가고 따지다가 폭행을 가하기도 한다. 피해를 당한다고 믿고 있으니 정당방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좀더 진행되면 라디오나 TV에서 자기를 비난하는 방송을 하고, 신문에는 빗대놓고 자기 비밀을 폭로하는 기사가 실린다고 화를 낸다. 생각의 흐름이 가끔 끊기고 헛갈려서 사태파악이 잘안되는 증세가 있는뎨 수사기관의 특수장치가 자기를 조정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더 진행되면 보통 있는 일들 하나하나를 수사기관과 관련시켜 해석하게 되고 환청도 들리게 된다. 환청의 내용은 자기를 욕하거나 이래라, 저래라 지시하는 종류의 것이다.
처음엔 환청의 지시를 따르지 앓으려 애쓰나 결국에는 환청이 지시하는 대로 행동하게 된다. 밥을 안먹기도 하고 불쑥 어딘가 다녀오기도 하는데 알고보면 환청이 시키는대로 행동한 것에 불과하다. 이 정도가 되어야 주위 사람들이 어딘가 이상하다고 알아차릴 수 있다.
망상형 정신분열증은 최근 증가추세에 있는데 아주 잘 짜인 망상과 그에 관련된 환청이 주 증세로 나타난다. 너무나 그럴싸하게 망상이 조직적이어서 얼핏 듣기엔 그것이 망상인지 사실인지 분간이 안갈 정도다.
망상형 정신분열증도 다른 정신분열증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2개월정도 입원가료를 해야 한다. 구태여 입원이 필요한 이유는 본인이 병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치료받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며, 한편으로는 우발적인 사고를 예방한다는 의미도 있다. 약물요법과 여러 보조적인 치료법을 시행하게 되는데 일단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깨닫고 치료를 받아야 겠다고 느끼는 상태가 되면 퇴원해서 통원가료를 받게 된다.
망상형 정신분열증은 비교적 예후가 좋은 질환이다. 그러나 조기발견·조기치료가 항상 중요하다. 가족이나 친지가 빨리 발견해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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