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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부대전술」로 미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현재 북괴의 출판물들이 소부대활동의.방침을 김일성의 전략전술인양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지만, 당시의상황으로 보아 수명씩 분산도피한 것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소부대활동」이란 실제로는 두가지의 형태로 나눠진다. 하나는 만주지방에서 항일연군이 전멸상태에 빠졌을 때 남은대원을 모아 간신히 소련에 도피할때의 활동이고 다른 하나는 소련에 들어가 제88특별여단에서 교육훈련을 받고 소련의 정찰임무를 실행했을때의 활동이다.
오늘날 김일성 일파가 선전하는 소부대 활동이란 이 어느것에도 해당되지 않을뿐만 아니라 비슷한 형태조차 존재하지도 않았다. 소부대 활동이란 그저 도피를 계속하는 과정이고 괴멸에의 접근에 지나지 않았다.
실제로 있었던「소부대활동」이 가능했던 것은 소련이라는 은밀한 장소와 기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김일성이 대위로 88여단에 있을 때 서기격으로 복무하는 소련출신의 한국청년 한사람이 있었다. 어느날 김일성은 그 서기에게 여단후방부에서 생선보급이 있으니 가서 받아오라고지시했다. 그러나 그날따라 서기는 가지않겠다고 단단히 버티었다. 그는 전에도 생선수령심부름을 몇번 했는데「회를 만들어서는 자기들끼리만 먹고」 그에게는 한번도 권하지 않은데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또 어느날인가 대위 김일성이 집무실에 들어오는데 일직관이었던 그서기가 여단장으로부터의 전달사항을 알려주었다. 그날의 회의장소가 제1회의장에서 제2회의장으로 바뀌었으니 그리로 나오라는 내용이었다. 김일성대위는 서기에게 제2회의장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다.그러나 서기는 어디를 제2회의장이라고 하는지 자신은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김일성은 『심부름을 하려면 정확히 해. 그런 애매한 말로 되는가』고 했다. 서기도 양보하지 않았다. 『심부름을 똑바로 하지않은게 뭡니까. 결정된 장소쯤은 본인이 기억할 일이지 나는 알 권리도, 알 이유도 없습니다』 고 대꾸했다. 그때의 서기는 자기앞에 서있는 이 대위가 겨우 3∼4년도 지나지 않아 소위「모든 인민의 영도자」가 되리라고는 전혀 상상도 하지못했다.
더우기 그후 멀지 않은 장래에 정말로 생선수령거부와 회의장소시비가 원인이 되어 자신의 운명을 망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것이다.
그일이 있고 10여년이 지난 어느날 김일성은 자신의 맹종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녀석(서기)은 믿을수 없는 놈이다. 나에게 말대꾸를 한 것만이 아니다. 그렇다,심부름도 거절한 적이있다.』
그무렵의 서기는 김일성의 이러한 생각과는 달리 그를 신봉하고 그를 위해서라면 생명까지도 바칠 용의가 되어 있었다.
서기는 북괴군창군, 6·25때 김일성의 한 참모로 적지않은 역할을 했고 김일성이 자기의 충성을 믿고 있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서기는 자신이 과거에 생각없이 저지른 「생선심부름거절죄」를 까마득히 잊고, 누가 그런 이야기를 할라치면 그럴리가 없었다고 펄쩍 뛰었을 것이다.
그는 끝내 투옥되었다.
그역시 지금 살아있다면 그는 수령님 주변의 나쁜놈이 자기를 모함했다고 생각하고 수령님이 자신이 처한 입장을 알기만 한다면 구원의 손길을 뻗쳐 줄 것이라고 믿고 있을 것이다. 나는 「생선」과「말대꾸」사건의 이야기를 듣고 김일성의 기억력과 복수심에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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