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지방 시대] 5. 마을 이장에 "땅 없나" 수백통 전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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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공기관 이전 예정지로 꼽히는 전북 김제시 백구면 가구단지 앞에 최근 중개업소가 크게 늘었다. 28일 땅 시세를 알아보려는 사람들이 중개사 사무실 앞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양광삼 기자

기업도시.혁신도시에 이어 정부의 공공기관 이전 발표로 전국의 땅값이 또다시 들썩이고 있다. 본지 취재팀이 28일 전국의 땅값을 긴급 점검한 결과 전남.전북 일부 지역은 이미 투기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다른 지역도 공공기관 이전이 확정될 경우 언제든 오를 기미다.

◆ 전남에선=28일 한전 등이 들어설 광주.전남 공동 혁신도시 후보지로 거론되고 있는 전남 장성군 진원면. 마을에 세워진 전봇대 곳곳에는 '땅 매매하실 분 환영'이라고 쓰인 전단지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J부동산 중개사무소에는 땅을 구하려는 이들이 줄을 잇고 있다. 사무실 책상 위에 놓여 있는 한 지역 신문엔 '진원면 도로에 접한 생산녹지, 현금 2억원'이라는 광고가 실리기도 했다.

주인 남모씨는 "하루 손님이 2 ~ 3명에 불과하던 게 지난주부터 20 ~ 30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남씨는 "한 달 전 평당 7만원 하던 논 2300여 평이 25일 내놓은 지 하루 만에 평당 15만원에 팔렸다"고 말했다.

이 마을에는 부동산 시장이 들썩이면서 지난주 초 부동산중개소 한 곳이 새로 생겨났다. 마을 이장 최모씨는 "'팔 땅이 있느냐'는 문의 전화가 하루 200여 통을 넘고 있다"며 "광주 등에서 하루 200 ~ 300명이 땅을 보러 오고 있다"고 전했다.

인근의 장성군 남면, 담양군 대전면도 사정은 마찬가지. 이 지역의 부동산중개인들은 부동산 상담차 밀려오는 전화를 받기조차 힘들 정도라고 말한다.

남면의 경우 지난 3~4월께 평당 4만5000원에 나온 논이 최근 9만원까지 올랐다. 이들 지역의 공시지가는 논의 경우 평당 3만원 선이다. 이들 지역의 땅값이 크게 오른 것은 혁신도시를 비롯, 특수시책 사업대상지로 집중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으로 땅값이 싼 데다 광주과학기술원 및 광산업체 등이 있는 광주 첨단산업단지와 맞붙어 있어 연계 개발 효과가 클 것으로 판단된다. 또 호남고속도로.88고속도로와 바로 연결돼 접근성도 좋다.

◆ 전북에선=전북 완주군 이서면 남계리. 혁신도시 후보지 중 하나로 거론되는 이곳은 지난 주말 정부의 공공기관 이전 계획이 확정 발표되면서 매물이 자취를 감췄다. 공인중개사 이모(45)씨는 "무조건 계약할 테니 땅이 나오면 연락해 달라고 조르는 사람이 하루 10명이 넘는다"고 말했다.

남계리의 경우 최근 도로변 논밭은 물론 길에서 멀리 떨어진 맹지도 평당 10만원 이상으로 올랐다. 지난 주말 8만~9만원에서 일제히 1만~2만원씩 오른 것이다.

그나마 땅 주인들은 토지공사를 비롯해 13개 공공기관이 전북 지역으로 이전한다는 발표가 나면서 내놓았던 매물을 모두 거둬들여 거래가 뚝 끊겼다. 이서면과 함께 혁신도시 후보지로 꼽히는 전주시 덕진구 남정동.성덕동 일대는 올 들어 전북도내서 부동산 가격이 가장 많이 뛰었던 곳 중 하나다.

성덕동을 관할하는 전주시 덕진구 조촌동 동사무소 관계자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논밭을 사기 위해 농지취득자격증명을 얻으려는 사람이 한 달 가야 기껏 20~30명에 불과했는데, 올 봄부터는 한 달에 200~300명씩 몰리면서 업무가 마비될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땅을 사는 사람의 80~90%는 서울.광주 등 외지인"이라고 했다. 전주 ~ 군산 도로변 주변인 전주시 덕진구 성덕동과 김제시 백구면 주변에는 올 들어서만 20여 개의 부동산중개업소가 새로 들어섰다.

◆ 다른 지역도 들썩=한국도로공사 유치에 나선 경북 상주시 지천동 일대(8만 평)와 청리면 마공리 청리산업단지 등의 주변 땅값도 들썩거리고 있다.

상주의 한 중개사는 "고속도로 IC 주변 등 주요 도로변의 땅값이 최근 들어 10% 이상씩 올랐다"며 "공공기관 유치가 가시화할 경우 더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일대 3번 국도변의 논은 평당 최고 15만원, 밭은 20만원에 육박하고 있다.

한국주택공사 이전이 확정된 경남은 유치 운동이 벌어진 진주.김해.양산.함양.창녕 등의 땅값이 들썩이고 있다. 진주는 문산읍 삼곡리 일대 바이오단지 주변 땅값이 최근 20 ~ 30% 올랐으며 김해시 장유면 내덕리 공공기관 예정부지 50만 평 주변 땅값도 오름세를 타고 있다.

가스안전공사 이전지로 꼽히는 충북 충주에서는 지난 주말부터 분양 중인 연수구획정리지구 아파트에 청약자가 갑자기 몰렸다.

현대건설 홈타운 관계자는 "평소 주말의 두 배 수준인 16명이 이틀간 계약을 했다"며 "남은 아파트가 1 ~ 3층 비인기층인데도 청약이 쇄도하는 것은 공공기관 이전에 따른 혁신도시 건설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 같다"고 말했다.

장대석.홍권삼.천창환 기자 <chuncw@joongang.co.kr>
사진=양광삼 기자 <yks23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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