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대1 뚫고 입사한 호텔신라 새내기 '서비스 신고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4면

▶ 새내기 호텔리어 5명은 밑바닥 일을 하며 서비스를 배우고 있다. 왼쪽부터 우승호, 채지탁, 황승현, 김정준, 조용진씨.

"도어맨 실습을 할 때였죠. 누구라도 알만한 원로 재계인사가 차 번호도 가르쳐주지 않고 '내 차 좀 빼와' 하더군요. 감히 차번호를 물어보지도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는데 선배 도어맨이 차를 가져왔습니다. 알고보니 호텔에서 일하려면 웬만한 VIP들의 차량번호와 차종은 기억하고 있어야 하더군요."

김정준(27), 채지탁(26), 우승호(27), 조용진(25), 황승현(23.여) 등 5명의 새내기 호텔리어는 요즘 혹독한 '신고식'을 치르고 있다. 지난해말 200대 1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호텔신라에 입사한 이들은 부서 배치를 앞두고 막바지 현장 실습에 한창이다. 이들은 3달간 룸서비스, 청소, 비품관리, 도어맨, 벨맨, 웨이터 등 호텔 밑바닥에서 이루어지는 온갖 허드렛일을 직접 체험해보며 호텔리어가 갖추어야 할 서비스 정신을 익히고 있다. 서비스를 파는 호텔에서 어떤 일들을 하고 있는지 알아야 제대로 된 업무를 볼 수 있다는 회사 지침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고려대.연세대.서강대 등 이른바 일류대 출신에 토익 점수도 900점 이상을 기록한 인재들이다. 몇 몇은 외국 생활 경험을 가지고 있고, 연수원에서도 1, 2등을 다툴만큼 성적이 뛰어났다. 실습이 끝나면 면세점 MD(상품기획자), 프런트, 홍보팀 등 중요한 부서에 배치돼 근무를 하게 된다. 하지만 서비스 현장에서는 실수를 연발하는 초보자들일 뿐이다.

"한병당 30만원이 넘는 포도주를 따는데 코르크 마개가 중간에서 부러지더군요. 주방으로 돌아가 간신히 부러진 마개를 제거하고는 다시 서빙을 할 수 있었습니다."

"쟁반 위의 잔을 테이블로 내려놓는데, 잔이 서로 부딪쳐 소리가 날 정도로 떨렸습니다. 보다못한 손님이 직접 잔을 들어 놓아주시더군요."

"한 기업체서 30개의 방을 회의실로 쓰겠다고 해서 침대를 빼는 등 난리를 쳤습니다. 회의를 마친 뒤에는 반나절만에 객실로 다시 셋팅하느라 파김치가 됐습니다."

온종일 서있느라 발에는 물집이 잡히고 종아리가 부어오르는 가운데 이들은 오히려 역설적으로 서비스의 중요성을 느끼고 있다. 초긴장 속에서 국빈 등 주요 인사들을 서비스 한 뒤 '수고했다'는 소리를 들으면 피로가 씻은 듯이 가신다고. 이들은 "호텔을 찾는 VIP들은 자기의 취향을 호텔직원들이 당연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더군요. 이런 분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고 모시는 것이 바로 서비스 정신 아니겠어요. 청소.서빙 같은 하찮게 보이는 일도 프로 정신이 없으면 안되겠다고 생각을 하게 된 것이 실습에서 거둔 큰 수확입니다"고 입을 모았다.

이현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