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E] 반도체는 산업기술 '마법의 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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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미국.스위스 공동 연구팀이 최근 1조 비트(테라비트.terabit) 반도체를 만드는 데 필요한 핵심 기초기술을 개발했다. 테라비트 반도체는 지금 주로 사용하는 기가(giga.10억)급 반도체의 1000배 용량으로, 손톱 크기의 반도체 하나에 500쪽짜리 책 100만 권을 저장할 수 있다. 이를 계기로 반도체가 필요한 이유와 생활에서 어떻게 쓰이는가 등을 공부한다.

◆ 반도체 왜 필요할까=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끼리 대화를 주고받으려면 전기신호를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 전기신호는 먼 거리를 이동하면서 약해지므로 중간에 증폭해 줘야 한다. 바로 이 증폭기능을 하도록 개발한 것이 진공관이다. 진공관은 무선전신 보급, 라디오.TV 발명, 컴퓨터 발전 등에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진공관은 너무 커 전자제품을 소형화하는 데 한계가 있었으며, 전력 소비도 많았다. 게다가 수명이 짧아 수시로 기계 고장을 일으켰다.

과학자들은 진공관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연구하다가 1947년 마침내 반도체의 일종인 트랜지스터를 개발하기에 이르렀다. 트랜지스터는 진공관보다 훨씬 작은 데다 가볍고 소비 전력이 적다. 반도체는 평상시 부도체처럼 전류가 통하지 않지만 열 또는 빛을 가하거나 불순물을 넣는 등 주위 환경을 바꾸면 전류가 잘 통하는 물질이다. 반도체는 실리콘.게르마늄 등을 녹여 얇은 판으로 만든 뒤 그 위에 미세한 회로를 새겨 만든다. 이 회로에는 수천만 개의 기억 공간(셀)이 있으며, 정보 기억 방법은 2진법이 쓰인다.

◆ 반도체의 종류와 쓰임새=반도체는 내부가 감자를 얇게 썬 것과 비슷해 칩(Chip)이라고 부른다. 또 여러 회선을 끌어모으는 공법을 사용하므로 집적회로(IC.Intergrated Circuit)로 부르기도 한다.

손톱만 한 크기의 칩에 얼마나 많은 회로를 그려 넣었느냐(집적도)에 따라 LSI(Large Scale Circuit.대규모 집적회로)→V(very)LSI→U(ultra)LSI로 발전했다. 초기 트랜지스터 수준을 LSI, 64~256KD램까지 K(킬로=1000)급을 VLSI, 1메가D램 이상을 ULSI라 한다. 64KD램에서 K는'킬로비트(bit)'를 뜻한다. 1킬로가 1000이므로 64KD램은 6만4000비트를 기억할 수 있는 반도체다. 영문을 기준으로 8비트가 조합돼 한 글자를 표현할 수 있으므로 64KD램에는 8000자에 해당하는 정보를 담을 수 있다. 64메가D램에서 메가는 '100만 비트'다.

따라서 64메가D램은 6400만비트 즉, 영문 800만자(신문 512쪽)의 용량이다. D램에서 D는 'dynamic'의 약자다. 전원을 끊으면 기억 내용이 모두 사라진다. 컴퓨터를 사용하다가 전원이 나가면 작업 내용이 모두 사라지는데, 이것이 D램의 기억상실증이다. D램에서'램(RAM.random access memory)'은'아무 때나 접근할 수 있는 기억소자'로 풀이된다. 자유롭게 정보를 저장하거나 꺼내 쓸 수 있다는 얘기다. 컴퓨터의 주기억 용량(메인 메모리)은 대부분 램의 용량을 말한다. 이에 비해 '롬(ROM.read only memory)'은 읽기 전용 기억소자다. 이 반도체에는 정보가 미리 담겨 있는데, 지우거나 바꿀 수 없다. 컴퓨터에 쓰이는 롬엔 컴퓨터 운용에 필요한 기본 명령어가 담긴다.

D램의 기억상실증을 보완한 것이 S(static)램이다. S램은 정보를 한번 기억하면 전기를 끊든지 다른 정보를 넣지 않으면 지워지지 않는다.

최근에는 D램과 달리 전원 공급이 끊겨도 정보가 지워지지 않는 '플래시 메모리'도 나왔다. 소비 전력이 적고, 정보의 입출력도 자유로워 디지털 TV나 카메라 등과 휴대전화.게임기.MP3플레이어 등에 널리 이용된다.

이들 반도체는 정보를 기억(저장)하는 역할만 하므로 통상 메모리 반도체라고 부른다.

두뇌의 또 다른 기능인 '생각'을 담당하는 반도체도 있다. 이를 비메모리 반도체라 부르는데 마이크로프로세서가 대표적이다. 이 반도체는 한 개의 작은 실리콘 칩에 컴퓨터의 연산장치와 제어장치를 집적시킨 처리장치로 컴퓨터의 중심인 CPU(중앙처리장치) 부분이 바로 마이크로프로세서다.

마이크로프로세서는 컴퓨터의 모든 부분을 통제하고 명령을 내리며 계산을 한다. 미국 인텔이 PC용 마이크로프로세서 세계 시장을 거의 독점하고 있다.

마이컴(마이크로컴퓨터)도 빼놓을 수 없다. 인공지능 또는 퍼지 등의 수식어가 붙는 자동화된 가전제품에 쓰이는 반도체 칩인데, 전자제품 작동에 필요한 여러 가지 명령을 담고 있다가 상황을 감지하고 작동한다. 칩 하나로 만들어진 소형 컴퓨터인 셈이다.

전자제품을 만드는 업체가 반도체 제조업체에 주문해 제작하는 '주문형 반도체'(ASIC)도 있다. 주문형 반도체에는 전자제품의 특성을 좌우하는 기능이 들어간다. 무선전화기에서 혼선.잡음을 줄이는 기능, 하나의 버튼으로 전화를 걸 수 있는 단축 다이얼 기능 등이 그 예다.

◆ 우리나라 반도체산업 현황=생산 비중이 메모리 제품에 8 대 2(세계 전체적으로는 2 대 8) 정도로 치우쳐 있다. 메모리 제품 가운데 D램은 전자제품의 기능이 다양화하면서 이들 기능을 기억하는 용량도 늘어야 하기 때문에 수요가 가장 많다. 지난해 우리나라 반도체 수출액은 265억 달러(전체 수출액의 10.4%)로 미국과 일본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그 가운데 D램은 세계 총매출의 45.2%로 압도적인 1위를, 플래시 메모리는 25.7%로 일본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이태종 NIE 전문기자.조종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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