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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영장 발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법운용에 있어 가장 중요한 원칙은 그 공정성을 보장하는 일이며, 법을 집행하는 기관이 법을 지키고 도행하는 일에 앞장서야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법원이 앞으로 비밀영장은 수사중인 중대국사범에 한해 발부하도록 검찰에 요청한것은 그런 뜻에서 너무도 당연하다.
비밀영장이란 형사소송법에 아무런 근거가 없는 법률행위지만, 그동안 우리 사법부에서 널리 통용되어왔다.
우리나라같은 특수한 여건에 있는 나라에서 영장발급이 모두 공개되어서는 곤란하다는 사정은 인정할 수있다. 가령 국사범의 구속사실이 알려지면 공범체포에 지장을 주거나, 수사가 어려워 공익을 해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사범이 아닌 공무원 뇌물범죄나 심지어 경제사범에까지 이런 편법이 통용되어 왔다는것은 이제도의 지나친 남용이라 하지 않을수 없다.
대출커미션을 받은 어느 은행지점장이나 박영복씨 재수감사건의 공범에 대해서 다른 국사범과 마찬가지로 비밀영장을 청구하고 발부받은 경우가 그것이다.
검찰로서는 세인의 관심이 많이 쏠린 이같은 사건을 조용히 처리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또는 구속사실이 알려짐으로써 이들이 입는 피해를 최소화해주려는 배려일수도 있다.
하지만 일반 영장으로써도 충분한 사건을 비밀영장으로 처리하는 이유가 무엇이건 그것은 법집행에 있어 공정성을 잃은 처사임에 틀림이 없다.
구속사실이 알려짐으로써 피의자가 입는 유형·무형의 손해를 보호해주거나 인권을 옹호해주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른 모든 피의자에게도 적용되어야 마땅하다.
비밀영장의 남용은 검찰권의 남용으로 이어질 소지가 없지 않을뿐 아니라 법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원칙에 비추어서도 지양되어야 한다.
물론 비밀영장을 청구하면서 수사상「보안유지」가 필요한 경우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이런 논리대로라면 어떤 영장발급에 있어서도 그런 구실은 내세울수 있는 것이다.
구속영장을 발급하면서 공정성과 형평의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 통용된다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수 없다.
「비밀영장」이란 말이 던져주는 인상마저도 음산하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법운용과 어긋나는 비정상적인 제도인것은 부인할수 없다.
이런 편법이 그동안 통용되어온 책임은 물론 검찰에만 있지는 않다. 검찰이 청구하는대로 발급해준 법원에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
검찰이나 정부의 청구나 압력에 끌려가다시피한 일이 이처럼 없지 않았기 때문에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했다는 사실은 두고두고 반성해야 할 것이다.
지금 사법부는 인권의 최후 보루로서의 본래의 기능을 다하기 위해 어느 때보다 의욕에 차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강요된 자백은 증거능력이 없다』고한 고숙종여인 선고공판의 판결은 이런 인권의식의 상징적 계기로 평가된다. 사법부뿐만 아니라 검찰의 인권에대한 인식도 많이 달라졌다. 이광원법무장관의 『국가안보를 위해서는 인권의 제약보다 신장이 오히려 유효하다』고 한말은 다시금 음미해 볼만하다.
사법부나 검찰의 인권에 대한 인식변화는 물론 인권옹호에 진일보한 규정을 한 새헌법과 그 맥락을 같이하고있다.
검찰의 편익 때문에 인권유린이란 말썽을 부를 이유는 없을 것이다. 비밀영장의 남발을 막기로한 법원의 검찰에 대한 요구가 그대로 받아들여져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한층 두텁게 되기를 바라고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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