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드라마 우리나라서" 각국 러브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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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 1 '겨울연가' 윤석호 PD의 차기작 '봄의 왈츠' 제작진은 요즘 해외 로케이션 장소를 놓고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다. 이탈리아.오스트리아.캐나다 관광청에서 동시에 제작 지원을 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제작사인 윤스칼라 조성우 실장은 "이들 관광청에서는 자기 나라가 한국 드라마 배경으로 등장하면 최대 고객인 일본 관광객을 유치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2 지난달 19일 필리핀 세부에서 열린 SBS 수목드라마 '돌아온 싱글' 제작발표회. 이 자리에 조셉 듀라노 필리핀 관광부 장관이 직접 참석했다. 그는 "200만 달러(20억원) 이상의 광고효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필리핀 관광부와 필리핀 항공, 샹그릴라 막탄 아일랜드 리조트 등은 '돌아온 싱글'제작진에게 항공료 75% 할인, 숙식 무료 제공 등의 지원을 해주고 촬영지로 유치했다.

한국 드라마가 일본.중국.동남아시아 등에서 크게 인기를 얻으면서 드라마의 해외로케이션 붐에도 가속도가 붙고 있다. 드라마를 통한 관광지 PPL(간접광고)을 노린 각국 관광청이 제작 지원에 적극적이기 때문이다. 제작사 입장에선 해외촬영의 부담이 많이 줄어든 셈. 웬만하면 한번 나가보자는 생각이 들 만하다. 하지만 해외촬영이 국내의 높은 시청률로 이어질지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 "어느 나라에서 찍을까" 행복한 고민

지난해 최고의 화제작 '파리의 연인'이 프랑스에서 촬영할 때만 해도 한국 드라마의 위세가 요즘 같지는 않았다. 당시 프랑스 관광청은 촬영장소를 알선하고 항공료.숙박료를 각각 30~50% 할인해주는 정도의 제작지원을 했다. 하지만 방송이 나간 뒤 드라마 특수를 톡톡히 누렸다. 프랑스 관광청 이명완 소장은 "특히 태영(김정은)과 기주(박신양)가 춤을 춘 저택으로 쓰였던 파리 근교의 샤토 드 몽빌라르젠 호텔은 방송 이후 한국인 관광객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며 "호텔 관계자들에게서 몇 번이나 고맙다는 인사를 들었다"고 말했다.

이 소장 말대로 '싼 값에 큰 효과'를 얻어서일까. 프랑스 관광청은 현재 드라마 제작사 두 곳과 지원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비와 고소영을 캐스팅, '못된 사랑'을 준비하고 있는 DNT웍스는 아직 드라마를 내보낼 방송사도 못 정한 상태지만 제작진은 프랑스 관광청에서 항공료와 숙식 지원을 받아 니스.빌프랑슈쉬르메르.모나코 등을 두차례나 답사하고 왔다.

SBS 주말드라마 '온리유'는 이탈리아 비첸차의 지원을 받아 해외촬영을 했다. '온리유' 제작사인 아이제이는 당초 피렌체.시슬리.나폴리 등 유명 도시에서 촬영할 계획으로 이탈리아 관광청과 협의를 시작했다. 협의 도중 관광청이 "비첸차가 어떻겠냐"며 제안을 해왔다. 이탈리아에서 다섯 번째로 큰 도시인데도 관광지로 부각이 안 됐다는 이유에서였다. 비첸차를 드라마 1회 분량에 배경으로 쓰면서 '로미오와 줄리엣' 원작자의 집과 성(城) 두 곳을 보여주는 조건으로 시는 제작진 45명에게 보름 동안 숙식을 제공하고 차량을 지원했다. 이뿐만 아니라 비첸차는 도로를 막고 경찰 병력까지 동원하며 촬영을 도왔다.

올 2~4월 방송된 '홍콩 익스프레스'는 홍콩 관광청의 지원을 받아 만들어졌다. 홍콩 관광청은 항공료와 숙박비를 대주고, 현금(2억원 정도) 지원도 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홍콩 야경과 란타우섬 등 관광명소를 보여주고, 드라마 제목에 '홍콩'을 넣어 달라는 주문을 했다. 홍콩 관광청은 방송이 끝난 직후 한 달 동안 '홍콩 익스프레스 주말 여행'란 이름의 관광상품을 만들어 3000여 명에게 팔았다.

▶▶ "시간 아까워" 제작사서 거절도

1991년 '여명의 눈동자'에서 시작된 드라마 해외 로케이션이 유행처럼 번진 건 지난해부터다. '발리에서 생긴 일'을 필두로, '영웅시대''파리의 연인''황태자의 첫사랑''풀하우스''유리화''미안하다 사랑한다''러브스토리 인 하버드''해신''슬픈 연가''홍콩 익스프레스''원더풀 라이프''그린 로즈' 등. 해외 촬영분이 포함된 드라마를 손에 꼽기도 숨가쁘다.

흥행 성적은 제각각이다(표 참조). 최고 시청률 50%를 넘긴 '파리의 연인'에서부터 평균 시청률이 10%에도 못 미친 '홍콩 익스프레스'까지. 해외 촬영이 흥행 보증수표이던 시대는 이미 지난 셈이다.

그래서인지 김정은.정준호를 내세워 8월에 첫 방송을 내보내는 '루루공주'는 해외로케이션 계획을 접었다. "괌.태국.필리핀 관광청에서 각각 제작 지원 의사를 밝혔지만 내실 있는 제작을 위해 국내 촬영만 하기로 최종 결정했다"는 게 제작사(김종학 프로덕션.포이보스.파크엔터테인먼트) 측의 설명. 왔다 갔다 하며 버리는 시간이 아깝다는 것이다. 김종학 프로덕션의 박창식 이사는 "이젠 해외 풍광을 보여준다고 해서 시청자들이 무조건 '와'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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