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슬픈 욕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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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욕설은 벗어남, 어긋남이다. 파괴며 폭행이고 일탈이다. 그래서 폭발력이 크다. 어떤 학자는 욕설의 뿌리를 계급사회였고 상하가 유별났던 우리 역사에서 찾는다. 낭자한 욕설과 상소리를 뿜어내는 탈춤은 갈등의 탈출구였고, 그 시대 욕의 전도사는 광대패였다. 그러나 욕이 넘치는 오늘, 젊은이가 광대의 뒤를 이었다.

1982년 중앙대 이주행 교수가 1200명을 상대로 한 '욕설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대학생과 고등학생이 욕에 대해 가장 긍정적이다. 98년 인터넷 PC 통신언어에 관한 한 연구에서도 '성적 표현.비방.욕설을 하는 주된 집단은 10~20대'로 결론 내린다.

중앙대 김상윤 박사는 2002년 대학생 300명의 욕 행태를 연구했다. 사회 언어학적 측면에서 대학생은 언어를 반영하는 거울이다. 모국어를 20년 넘게 했고, 교육도 받았다. 그러나 아직 사회 규범의 압력을 강하게 받지 않고, 새 언어에도 민감해 욕을 쉽게 쓴다. 이들이 잘 쓰는 욕 100개씩을 조사해 중복을 빼자 1만2752개였다. 소사전에 3만~5만 단어가 올라 있으니 대단한 욕쟁이들이다.

대학생 100명을 상대로 한 조사도 있다. 너무 너절해서 일일이 인용할 것은 없지만 '가끔 욕한다' '자주 한다'를 합해 84%다. 욕의 일상화다. 욕을 '별생각 없이'(45%), '화풀이로'(30%)도 한다. '별생각 없이'는 82년 조사에서 6%였다. 2003년 20대가 주로 활용하는 방송.신문.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299개 글의 욕설 및 폭력적 언어의 빈도를 조사한 연구에서도 26.4%에서 욕설 등 폭력적 언어가 난무했다. 욕설을 대신한 '××'란 표현도 35%의 글에서 나왔다. 욕된 표현이지만 젊은이들이 욕을 숨 쉰다는 느낌이 든다.

김열규는 저서 '욕-그 카타르시스의 미학'에서 "욕은 좌절감, 실망, 실의 등이 분노, 증오, 원한 등과 앞뒤로 또는 안팎으로 어렵게 뒤얽혀 폭발한다. 갈 데까지 간 파국의 경지가 욕"이라고 했다. 일부지만 욕에 젖을 만큼 좌절에 빠진 풀 죽은 젊음이 안쓰럽다. '파국의 징후'라는 욕을 젊은이가 널리 쓰는 것도 찜찜하다.

또 'GP사건'을 겪고 나니 젊음이 무리지어 있는 군도 걱정된다. 아닌 척해도 실제론 '욕하는 고참과, 그에 분노하는 병사'에 대한 걱정을 하지만 시원한 대책은 없기 때문이다.

안성규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