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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지 돈 꿔서 미국행 5년 만에 '메이저 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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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버디 김'이란 이름은 세계적인 골프 교습가 데이비드 레드베터가 지어줬다. 지난 겨울 레드베터와 1년간 레슨 계약을 한 직후다. 그러나 레슨은 한 달 만에 그만뒀다. 레드베터가 워낙 바빠 자기에게는 신경을 거의 못 쓰더란다. "레슨비 주고 이름만 받고 나온 셈이죠."

이런 얘기를 웃으며 전해주는 명랑한 처녀. 하지만 5년간 미국 무대에서 갖은 고생을 하며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된 파이터. 그가 김주연(24.KTF.사진)이다.

김주연 선수가 27일 2005 US여자오픈골프대회를 정복했다. 올해 60회째인 US여자오픈은 LPGA 투어 최고 권위의 메이저대회. 그는 최종 라운드 18번홀에서 기적 같은 벙커 버디 샷으로 하루아침에 무명에서 신데렐라가 됐다. LPGA 생애 첫 승을 메이저에서 거둔 것이다.

박세리.박지은에 이어 한국 선수로 세 번째 메이저대회 우승이다. 상금은 56만 달러(약 5억6000만원). 지난 5년간 LPGA 1, 2부 투어를 드나들며 번 돈(약 18만 달러)의 세 배 이상을 단번에 챙겼다. 앞으로 5년간 전 경기 출전권도 받았다. 노무현 대통령의 격려축전도 이날 받았다.

◆ 여고 2년 때 국가대표=골프채를 처음 잡은 건 청주 대성초등학교 5학년 때인 1992년이었다. 아버지(김용진)와 친분이 있던 프로야구 선수 김일권(당시 해태 타이거즈)씨가 "체격도 크고 운동신경도 좋으니 골프 한번 시켜보라"고 권유했다.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여고 2년생이던 98년 국가대표에 뽑혔다. 그리고 그해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단체전 은메달을 땄다. 이듬해엔 한국주니어골프선수권.중고골프연맹회장배 우승. 이렇게 국내 아마추어 무대에서 19승을 하면서 '제2의 박세리'란 별명을 얻었다. 그의 부모는 청주의 아파트를 팔아 전셋집으로 옮기고, 옷가게를 해 그를 뒷바라지했다.

◆ 돈 꿔서 미국행=미국행 비행기에 오른 건 2000년 1월. "더 큰 무대에서 뛰고 싶다"는 김 선수와 아버지의 뜻이 투합했다. 여비와 경비는 아버지 김씨가 친지들에게 꿔서 댔다. 꾼 돈은 2002년 KTF에서 후원금(5년간 6억5000만원)을 받아 갚았다고 한다.

미국 생활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미국에 도전한 여느 골퍼들이 그러하듯 김 선수의 뒤에는 아버지의 헌신이 있었다. "미국에 간 2000년 10월 퀄리파잉스쿨 개막을 사흘 앞두고 주연이가 연습 라운드를 하다가 카트에서 떨어졌어요. 오른 손목뼈에 금이 갔어요. 도전을 포기했지요. 내가 카트를 몰았는데 죄책감에…." 아버지 김씨의 회고다. 고생 고생끝에 2부 투어 3년을 거쳐 1부에 데뷔한 지난해 성적은 겨우 '20회 출전에 세 번 컷 통과'였다.

US여자오픈은 박세리 선수가 98년 7월 '맨발 투혼'으로 우승했던 대회다. 7년 뒤 그 자리에 선 김 선수는 "이제 시작"이라고 했다.

정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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