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사우디의 통치비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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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이란의「샤」가 실각하던 해에 일단의 사우디아라비아 광신자들이 메카의 대사원을 점거하고 반란을 일으키자 사람들은 중동에서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는걸로 알았다. 사우디아라비아도 이란처럼 이슬람적 폭력과 혼란속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우려는 그 당시로 봐서는 당연한 것이었다.
미대사관은 사우디아라비아에 거주하는 미국인들에게 철수 대기령까지 내렸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사우드」왕가를 붕괴시키지 않았으며 반란을 수습하는 과정은 첫 인상과는 달리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공통점이 많지 않음을 보여 주었다.
엄격한 이미에사 사우디아라비아는 정치활동이란 없다. 국외에서는 반정부 활동이 있고, 미국 대학에서는 모임도 갖는다. 자유의 소리란 잡지도 발간한다. 이들은 왕국 내에 존재하는 엄격한 자유의 억제에 항의한다. 그들은 또 사우디아라비아정부내의 부정부패를 비난하고 전시효과위주로 추진된 개발계획이 낳은 낭비를 지적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학교를 마치면 귀국해서 직장을 갖는다.
통상성 차관인「자밀」박사는『모두 젊어서 그러니까 우리는 이들을 처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하는 외국인은 일반 분위기 속에서 압박감을 느끼지만 사우디아라비아 사회에서 개인이 느끼는 속박은「샤」치하의 이란에서처럼 표면화되지 않는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반체제 인사나 비관자를 살해하지 않는다. 고문도 않는다. 국제 인권문제의 감시자인 국제 앰네스티도 이점에 대해서는 불평이 없다. 사우디아라비아에는 정치범이 없다. 메카 난동사건의 관련자들도 81년초에 모두 풀려났다.
그러나 외국간행물에 대한 검열은 엄격하다.「로버트·래시」가 쓴『왕국』이란 책도 내용중 82개 항목에 대한 불만 때문에 판금되어 있다.
서점에서 파는 타임과 뉴스위크 같은 시사잡지는 위스키광고가 찢겨진 채 팔리고 있다. 그리고 사진중에 수영복을 입거나 어깨를 드러낸 여자사진이 있으면 드러난 맨몸을 검은 잉크로 지워 놓는다. 국내 신문은 마치 교우지처럼 식당·도서관의 규정에 대해 불평하는 기사는 싣지만 체제 자체에 의문을 표시하는 글은 찾아 볼 수 없다.
그러나 서민들은 왕이나 왕자들을 만날때 면전에 대고 맹렬한 비판을 가할 수가 있다. 그리고 서민들이 왕족을 가까이 만나는 기회는 무수히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직접 하는 비판은 개인의 자유로 인정되지만 공개적으로 비관하는 것은 부정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정치의 비결은 어쩌면 여기 있는지도 모른다.
「할리도」왕이 정년의 기도시간전에 마더궁에서 일반시민들을 접견하는 모습을 보면 이란의「샤」와는 비교가 안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때가 되면 길거리에서 물건을 팔던 사람이나 공사장에서 땅을 파던 사람들이 흙 묻은 옷을 그대로 입고 몰려든다.
이들은 왕 앞으로 나가서 악수하고 때로는 그의 어깨나 코에 키스한다.
이들은 대개이때 왕에게 청원을 한다. 돈을 달라거나 재능있는 아들을 외국에 유학 보내 달라는 따위의 청원을 공책장을 찢은 종이에 써서 왕에게 주면 왕은 이를 받아 옆에선 보좌관에게 줘서 문제를 해결하게 해준다. 이 면담을 마즐리스라고 한다.
이 마즐리스의 효력을 과대평가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러나 이 만남은 적어도 왕과 국민간의 신뢰를 늘 재확인하는 중요한 제도임에는 틀림없다.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에는 왕좌가 따로 없다. 왕이 아무데서나 옆에 있는 의자를 당겨 앉으면 그게 곧 왕좌다.
메카의 반란사건은, 종교적 전통과 서구형 개발정책 사이에 내재해있는 팽팽한 긴장감을 확인하는 것이긴 해도 이 사건이 수습되는 과정은 광신자들의 서구화 반대가 일반국민들의 호응을 전혀 얻지 못하고 있음도 아울러 입증했다.
사우디아라비아에도「호메이니」와 같은 종교지도자가 있지만 이들은 왕실과 밀착해 있다. 올레마라고 불리는 이들 종교지도자는 사법권을 장악하고 있다. 때론 행정부와 의견충돌들이 있기는 하지만 근본적인 이견이 있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종교가 갖는 독립적 권위 때문에 아랍세계에서는 드물게 사법권의 독립을 유지하고 있다.
이들 산하에는 속칭 종교경찰로 알려진「덕의 전파와 악의 예방 위원회」위원들이 1백년전과 마찬가지로 회초리를 가지고 거리를 순찰하고 있다. 10년전만해도 이들은 가수가 노래 부르는 것을 막았고 길거리에서 담배 피우는 것을 금지했다. 그러나 요즘은 기도시간을 지키지 않고 가게를 열어둔 상인들을 벌주는 경도의 역할을 한다.
이 위원회가 최근 내린「혁명적인」평결은『자기 딸이나 누이가 약혼자에게 얼굴을 보이지 못하게 하는 자는 죄를 범하는 것이다』는 것이었다.
이런 정도의 개혁을 외부세계의 기준으로 따진다면 개혁 이랄것도 없다.
이란의「샤」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느림보 개혁을 늘 비웃었었다. 그러나 오늘날「샤」가 사라졌는데 비해 「사우드」왕가는 건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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