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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의 자연사 이야기] 사람 모습 닮은 아르디·루시, 발가락이 달랐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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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8호 25면

아르디(Ardi)의 발가락은 나무를 잡을 수 있을 정도로 마주 보고 있으며, 손은 유인원보다 훨씬 유연하다. 송곳니 크기는 현생 인류의 중간 크기이며 골반 넓이는 루시 정도다.

한동안 가장 오래된 인류의 조상 화석 권좌를 누렸던 이는 루시(Lucy)라고 불린 여성이었다. 침팬지 크기만 한 이 여성은 1974년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됐다. 루시는 300만~360만 년 전에 동(東)아프리카지구대에 살았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Australopithecus afarensis)의 일원이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남쪽의 민꼬리원숭이’란 뜻이다. 이때부터 루시는 모든 교과서에 인류의 최고(最古) 조상으로 기록됐다. 루시에서 비롯된 혈통이 현생 인류까지 이어진다고 여겼다.

<17> 인류 조상의 탄생

이런 관점에 생화학자들이 반기를 들었다. 분자생물학이란 강력한 무기를 가진 생화학자들이 보기엔 인류 스토리의 초기 배역들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인류학자들은 이들의 주장을 무시했지만 생화학자들은 인간과 여러 유인원의 DNA(유전자)를 비교했다. 현존하는 동물 중에서 침팬지가 인간과 가장 가까운 친척임을 밝혀냈다.

인간·침팬지 공동 조상은 수수께끼
돌연변이는 일정한 속도로 DNA에 쌓이기 때문에 DNA의 변화를 시계처럼 이용하면 한 종(種)이 다른 종에서 갈라져 나온 시기를 추정할 수 있다. 인간과 침팬지의 DNA 차이는 2%다. 2%의 차이가 생기려면 500만~700만 년이 필요하다. 따라서 루시보다 훨씬 오래된 인류 최초의 구성원이 있어야 한다. 침팬지 무리에서 갈라져 나와 독자적인 진화의 길에 들어서기 전 침팬지들과 마지막으로 공유했던 조상 인류가 되는 유인원의 존재는 오랫동안 수수께끼로 남았다.

진정한 호미니드(hominid, 인류의 조상)의 시험대를 통과하려면 목 아랫부분의 뼈들이 반드시 있어야 했다. 침팬지나 고릴라처럼 주먹을 땅에 대고 걷는 게 아니라 직립보행을 했다는 증거를 댈 수 있는 뭔가가 필요했다.

잠깐, 유인원은 무엇이고 또 호미니드는 무엇인가? 이들은 영장류 또는 인류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인간은 척추동물 중에서도 영장류라는 포유류의 하위집단에 속한다. 영장류는 주로 나무에서 생활하는 포유류다. 여기엔 원숭이·여우원숭이·안경원숭이·유인원이 포함된다. 원숭이(monkey)에겐 꼬리가 있지만 유인원(ape)에겐 꼬리가 없다. 꼬리 없는 유인원엔 인간뿐 아니라 고릴라·침팬지·보노보·오랑우탄이 포함된다. 이 가운데 침팬지는 인간과 DNA의 98%가 일치하며 고릴라는 97%가 일치한다. 침팬지 계통과 인류 계통은 약 600만 년 전에 갈라섰다. 물론 당시 인간은 지금의 인간이 아니었다. 현대 인류의 선조인 그들을 호미니드라고 부른다.

인간으로 가는 첫 단계, 단단한 발바닥
1995년 1월 에티오피아 황무지에서 미국 고(古)인류학자 팀 화이트(Tim White)의 조수가 호미니드의 손뼈 하나를 발견했다. 그곳은 루시가 발견된 곳에서 75㎞쯤 떨어진 곳이었다. 그 뒤 며칠 동안 대원들은 그 부근의 흙을 죄다 양동이에 쓸어담고 일일이 체로 걸렀다. 체로 거르고 다시 땅바닥을 긁어대는 단순 노동은 지루하기 짝이 없지만 그만한 대가가 있었다. 그들은 호미니드의 골반·다리뼈·발뼈·손뼈·발목뼈·이빨이 붙은 아래턱뼈와 머리뼈를 찾아냈다. 이 뼈들은 고인류학의 로제타석(石)이라 부를 만했다. 이 호미니드가 직립보행을 했는지 여부를 아는 데 필요한 해부학적 요소를 다 갖췄기 때문이다. 440만 년 전에 살았던 이 호미니드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속(屬)과는 달랐다.

화이트는 ‘땅’을 뜻하는 ‘아르디피테쿠스’를 속명으로 사용해 화석에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Ardipithecus ramidus)란 이름을 붙여주었다. 사람들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를 ‘루시’란 별명으로 부르듯이 이 개체는 ‘아르디(Ardi)’라고 간단히 불렀다.

아르디는 침팬지와 호미니드 계통이 갈라선 지 160만 년밖에 지나지 않은 호미니드다. 아르디는 흥미로운 전이적(轉移的) 속성을 보여준다. 우선 아르디의 발바닥은 침팬지보다 단단해졌다. 단단한 발바닥은 지레처럼 작용해 두 발로 걷기 쉽게 했다. 현대 인류도 발바닥은 단단하다. 하지만 아르디의 발은 진화적 전이의 단면도 보여준다. 여전히 엄지발가락이 다른 발가락들과 마주 보는 형태였다. 덕분에 숲 속의 나무 집에 쉽게 오를 수 있었다.

사족보행보다 이족보행이 에너지 소모 적어
두 발로 걷게 되자 일련의 진화적 도미노 현상이 일어났다. 하나의 변형이 다른 변형의 방아쇠가 되었다. 변화는 아래에서 위로 올라갔다. 발가락→다리→골반→등뼈→머리뼈 순이었다. 아르디로부터 100만 년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 태어난 루시는 현대 인류와 거의 구별되지 않는 발을 갖게 되었다. 루시의 엄지발가락은 다른 발가락들과 평행하게 진화했고, 그 네 발가락은 침팬지보다 훨씬 짧아졌다. 루시의 발바닥엔 아치 구조가 생겼고 뒤꿈치가 길어졌다. 이것은 걸을 때 충격을 흡수했기 때문에 훨씬 더 오래 걸을 수 있었다. 유인원 사촌들이 안짱다리인데 비해 루시의 다리는 길고 곧아졌다. 두 발로 서서 걷기 때문에 골반은 사발처럼 변해 내장을 받쳐줘야 했다. 그리고 등뼈는 S자로 휘어 충격을 잘 흡수했다.

두 발로 걸으면서 생존에 더 유리해졌다. 호미니드의 이족(二足)보행과 침팬지의 사족(四足)보행을 비교한 결과 이족보행이 에너지 소모가 더 적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더 중요한 사실은 두 손이 자유로워졌다는 것이다. 침팬지의 엄지손가락은 두 번째 손가락까지만 닿는다. 하지만 사람의 엄지손가락은 나머지 네 개의 손가락 모두와 마주칠 수 있다. 손의 힘줄도 변해 유인원보다 손목을 훨씬 더 많이 비틀 수 있게 되었다. 호미니드는 다른 유인원과 확실히 다른 존재로 변해 있었다.

1960∼70년대까지 20년 동안 동아프리카에서 2000점이 넘는 호미니드 화석과 수십만 점의 동물 화석이 발견됐다. 그러나 동아프리카에서 발견된 침팬지나 고릴라 화석은 단 한 점도 없었다. 침팬지와 고릴라가 인간과 유사한 DNA를 갖고 있다는 점을 되새긴다면 이는 큰 수수께끼였다. 1985년 루시의 공동 발견자인 프랑스 인류학자 이브 코팡(Yves Coppens)이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가설을 제시했다.

동아프리카지구대. 지각판 운동으로 형성된 지구대는 서쪽과 동쪽의 기후를 완전히 다르게 만들었다.

800만~1000만 년 전, 대서양에서 인도양에 이르는 아프리카 적도 지역은 열대우림으로 뒤덮여 있었다. 이곳은 인간과 침팬지의 공통조상이 살던 보금자리였으나 지각판의 운동으로 화산들이 폭발하면서 지형이 바뀌고, 동아프리카지구대(地溝帶, 띠 모양의 낮은 땅)가 만들어지면서 아프리카 동부가 둘로 쪼개졌다. 서쪽 테두리와 경계를 이루는 땅의 어깨 부분이 밀려 올라가 높은 산맥이 생겨났다. 높은 산맥과 낮은 계곡 바닥이 기류의 순환을 방해하면서, 서부 열곡 서쪽 사면에 비구름이 갇혔다. 이로 인해 기후가 바뀌어 열곡 서쪽 사면은 비가 많고 습한 지역이 됐지만, 동쪽 사면의 땅은 덥고 건조해졌다. 침팬지를 비롯한 유인원의 조상들은 열곡대 서쪽의 숲에 머물렀다. 이에 반해 인간의 조상들은 동쪽 열곡의 건조하고 개방된 환경으로 진출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인간의 조상은 더욱 넓은 범위의 서식지에 적응할 수 있었기 때문에 생존 가능성이 더 높았으며, 후대 호미니드들의 적응능력도 높아졌다.

이 매력적인 모델은 침팬지와 인간이 유전학적으로 그렇게 가까우면서도 그 조상들의 화석이 결코 같은 장소에서 발견되지 않는 이유를 간단히 설명한다. 이 가설이 과학적인 까닭은 간단히 반증(反證)될 수 있어서다. 동아프리카지구대 동쪽에서 유인원의 화석을 발견하거나 서쪽에서 초기 호미니드 화석을 발견하면 그걸로 게임 끝이기 때문이다.

인류 요람의 크기 넓혀준 ‘아벨의 턱뼈’
여기에 도전한 사람이 바로 미셸 브뤼네(Michel Brunet)다. 프랑스의 별로 유명하지 않은 고생물학자였던 그는 고대 열대우림이 있었을 만한 곳을 찾아 카메룬으로 향했다. 그때까지 숲에서 화석을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브뤼네는 유인원 또는 최초의 호미니드들이 살았을 법한 숲을 여러 해 동안 뒤졌다. 하지만 곧 동료들이 옳았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실제로 거기엔 화석이 된 뼈는 하나도 없었다. 토양은 지나치게 산성(酸性)이었고 모든 화석이 오래전에 분해되고 없었다.

1994년 마침내 브뤼네는 차드의 주라브 사막으로 갔다. 이곳 역시 동아프리카지구대의 서쪽이었다. 하지만 화석이 남아 있을 만한 곳이었다. 팀 화이트가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를 찾던 그 무렵, 브뤼네는 서쪽으로 2500㎞ 떨어진 곳에서 사막을 뒤지고 있었다.

1995년 1월 23일 아침, 브뤼네는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천으로 머리를 싸매고 스키 마스크를 눌러쓴 채 아프리카 한복판에 위치한 차드의 주라브 사막에서 또 하루를 시작했다. 고생물학자의 눈·코·입과 귓속으로 모래바람이 사정없이 몰아쳤다. 브뤼네의 탐사팀은 허리를 구부리고 천천히 걸으면서 하나라도 놓칠세라 바닥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뼈를 찾아 사막 바닥을 쓸면서 아무리 작은 화석 조각이라도 그냥 지나치지 않도록 같은 곳을 앞뒤로 반복하며 지나갔다.

차드인 운전기사 마멜바예 토말타가 큰 소리로 브뤼네를 불렀다. 이빨이 붙어 있는 턱뼈가 땅에 박혀 있었다. 브뤼네는 붓으로 모래를 털면서 턱뼈를 살폈다. 언뜻 보면 고대 유인원의 턱뼈와 비슷했지만 이빨의 생김새는 인간의 이에 더 가까워 보였다. 브뤼네는 그것이 300만~350만 년 전 호숫가에 살았던 초기 인류의 턱뼈임을 알아봤다. 인류 화석을 찾아 헤맨 지 19년 만에 마침내 호미니드의 실제 뼈를 만져보게 된 것이다. 이것을 ‘아벨의 턱뼈’라 한다.

이 작은 턱뼈 하나로 350만 년 전에 호미니드가 아프리카 동부에서 서부에 걸쳐 존재했음이 입증됐다. 그렇다고 해서 코팡의 가설이 잘못됐다는 증거는 안 된다.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보다 100만 년이나 젊기 때문이다. 브뤼네는 이에 대해 “우리는 인류의 요람이 어디였는지 알아냈다는 것이 아니라, 그 요람이 생각보다 훨씬 크다는 사실을 밝힌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정모 연세대 생화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독일 본 대학교에서 공부했으나 박사는 아니다. 안양대 교양학부 교수 역임. 『달력과 권력』 『바이블 사이언스』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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