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성학 대회 24일 폐막] 대회 성공 이끈 봉사자 270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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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그 미국인 손을 잡고 펑펑 울었어요. 가장 보람있는 순간이었습니다."

제9차 세계여성학대회에서 영어 통역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황민영(45.서울 강남구 도곡동)씨는 22일 수요일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세계 여성학자 100여 명과 함께 피켓을 들었다. 이 자리에서 한 미국인은 일본인 남편과 결혼해 일본에서 20년 이상 살면서도 종군위안부 문제를 처음 알았다며 눈물을 쏟아냈다.

집회에는 예상보다 두 배나 많은 외국인 여성학자들이 참석했다. 황씨 등 통역 자원봉사에 나선 강남구 여성센터 영어.일어반 주부들이 외국인들에게 적극 홍보한 결과다. 자원봉사자들의 힘으로 세계 여성학계에 정신대 문제를 알린 셈이다.

아시아에서 처음 열린 제9차 세계여성학대회가 아쉬운 폐막을 앞둔 가운데 대회장 곳곳을 빛낸 자원봉사자들의 활약이 눈길을 끌고 있다.

이번 대회의 손발이 되기로 자청한 자원봉사자는 모두 270명. 그중에서도 강남구 여성센터의 주부 봉사단 14명이 단연 으뜸이었다. 이들은 50개 전시장에서 통역 안내를 맡았다. 일본인 통역을 맡은 송영화(41.대치동)씨는 "영어가 서투른 일본인이 날 만나고는 '이제 살았다'는 표정을 지을 때 가장 기뻤다"고 말했다. 이세령(50.수서동)씨는 "이번에 외국인 여성학자 친구를 사귀었다"며 이스라엘인 참가자가 우정의 표시로 선물한 시화집을 내보였다.

외국인 자원봉사자들의 활약도 눈부셨다. 풀브라이트 장학재단의 영어 교환교사인 존드레 제닝스(경기도 이천고)는 하루 8시간씩 매일 발행된 학회 관련 영문 소식지의 기사를 다듬는 자원봉사를 했다. 그는 이미 지난해 9월부터 '서울 여성의 전화'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제닝스는 "한국 학생들과 일한 경험은 잊을 수 없을 것"이라며 "국제적인 여성학 행사를 통해 세계 여성들이 함께 경험을 공유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중국 톈진대의 이화여대 교환학생인 중국인 타오지아는 이번 대회 자원봉사자 중 유일한 중국어-영어 통역자다. 중국어 관련 통역은 타오가 도맡았다. 다른 봉사자들과 달리 그는 논문 통역을 맡았기 때문에 발표자들의 논문을 미리 다 읽고 전문 용어를 공부하는 게 힘들었다. 그러나 타오는 "세계 각국에서 모인 여성학자들과 만나 새로운 분야에 대해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며 웃었다.

이화여대 영자신문사 이화보이스(Ewha Voice)의 학생기자 18명도 숨은 일꾼이었다. 대회기간 중 아침마다 참가자들에게 A4 용지 16쪽 분량의 영문 소식지를 전달하기 위해 대회장 곳곳을 누비며 하루 16시간 이상씩 구슬땀을 흘렸다. 강서미(국제학부 4년)전 편집장은 "외국인들은 휴대전화가 없어 인터뷰가 갑자기 취소되기라도 하면 숙소에 찾아가 방문 밑에 편지를 밀어넣고 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문경란 여성전문기자, 홍주연.박성우.박수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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