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자 아마골프 우승 여고2년 신지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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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18번 홀 챔피언 퍼트. 소녀는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봤다. 어디에선가 엄마가 웃고 있을 것 같았다. 빨리 달려가 엄마 품에 안기고 싶었다. 그러나 엄마는 이 세상에 없다.

23일 충남 유성 골프장에서 끝난 제29회 한국여자아마추어골프선수권대회에서 우승(3라운드 합계 13언더파 203타)한 신지애(17.함평골프고2)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우승 트로피를 들고서도 가볍게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그동안 너무나 많은 눈물을 흘렸기에 더 이상 나올 눈물이 없었을까.

"2003년 11월이었어요. 엄마(나송숙씨, 당시 43세)가 차를 몰고 가다 사고로 돌아가셨지요. 그때는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함께 차를 탔던 여동생 지원이(14)는 팔과 다리가 부러졌고, 남동생 지훈이(8)는 목을 크게 다쳐 곧장 병원으로 실려갔다. 이때부터 지애 가족의 병원 생활은 시작됐다. 목사이던 아버지(신제섭.46)는 아들딸 간호를 위해 목회 일을 그만뒀고, 지애 역시 셋방을 나와 병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가정형편이 어려울수록, 힘들수록 골프를 더 잘해야겠다고 다짐했지요. 엄마가 나를 지켜보고 있을 거라고 믿었거든요."

지애는 병원에서 먹고 자면서도 하루도 훈련을 거르지 않았다. 하늘나라에 계신 엄마, 병상에 누워 있는 동생들을 생각하면서 클럽을 휘둘렀다. 그 결과 지난 1월엔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아버지가 일정한 수입이 없기 때문에 주위의 도움을 받아 대회 경비를 충당했지만 그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두 동생이 1년 만에 퇴원하던 지난해 10월, 지애의 병원 생활도 끝났다.

선수권대회 최종 3라운드가 열린 23일, 신지애는 무서운 뒷심으로 역전 우승했다. 전날까지 선두에 3타 뒤진 2위였지만 이날 보기 없이 버디만 6개를 잡아내 최송이(연세대)를 1타 차로 제쳤다. 4월 매경 빅야드배 대회에 이어 2승. 3월 한.일 국가대항 학생골프대회에서 우승한 것까지 포함하면 3승째다.

"내년 아시안게임에 태극마크를 달고 나가서 금메달을 따고 싶었는데 목표를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요즘엔 프로 무대에 뛰어들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뒷바라지를 아끼지 않는 아빠와 친지분들에게 하루빨리 보답하고 싶거든요."

1m55㎝의 크지 않은 체구지만 270야드(245m)를 넘나드는 드라이브샷이 장기다. 쇼트게임과 퍼트를 보완한다면 프로 대회에서 우승 트로피를 치켜든 그의 모습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정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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