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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선 2035

진짜 맛있는 집을 찾는 비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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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현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이현
JTBC 국제부 기자

나는 맛집 좋아하는 여자다. 이 단맛이 설탕 때문인지 꿀 때문인지, 이 감칠맛이 고기 맛인지 조미료 맛인지 분석하며 먹는 게 낙이다. 비가 오는 날이면 목포에서 올라온 쫄깃한 낙지호롱이 그립고 술을 마신 다음날엔 슴슴한 평양냉면 국물이 생각난다.

 내 친구들도 맛집을 좋아한다. 마땅한 취미생활이 없는 20대 후반 여성치고 맛집 안 좋아하는 여자 없다. 그런데 내 친구들이 좋아하는 맛집은 엄밀히 말해 ‘방송에 나온 맛집’이다. 중요한 자리가 있어 맛집을 추천해 달랬더니 ‘데이트 필수 코스 맛집’만 줄줄 읊어댄다. 위치는 주로 경리단길이나 서래마을. 조리법은 왜 이러나 싶을 만큼 맵거나, 인상이 써질 만큼 들척지근하거나, 어울리지도 않는 치즈를 넣는 게 이들 식당의 공통점이다. 요즘 아가씨들이 자주 가는 맛집은 요컨대 맛보다 분위기에 더 치중하는 곳들이다. 이런 속사정을 모르고 맛집 좋아한다는 소개팅녀를 시장에 있는 60년 전통의 도가니탕 집에 데려갔다가 보기 좋게 차였다는 남자 동료 이야기에 쓴웃음을 지은 기억이 난다.

 그들과 달리 나는 진짜 ‘맛’을 중요시한다. 재료값을 아끼려고 바지락을 넣은 봉골레와 모시조개를 넣어 만든 봉골레의 차이를 안다. 유명 맛집 소개 프로를 진행하는 여배우가 아무리 “맛있다”를 외쳐도 미간에 주름 세 개가 잡히지 않으면 진짜 맛있는 게 아니라는 점도 알고 있다. 외국산 아스파라거스나 루콜라 맛은 잘 몰라도 최소한 시든 부추과 싱싱한 부추는 가릴 수 있다.

 이런 나이기에 미디어 홍보에 한눈파는 맛집에는 결코 현혹되지 않는다. 외국 여행 갈 때도 절대 우리나라에서 나온 여행책자를 사지 않는다. 한국 책자에 소개된 맛집은 오직 한국 사람들만 줄을 서서 먹는 식당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미식의 도시 파리에서 체인 레스토랑의 홍합찜을 먹고 샹젤리제에 있는 마카롱 체인점에 들르는 게 관광코스가 된 것도 다 그 때문일 것이다. 나는 차라리 오며 가며 스치는 현지인에게 맛집을 묻는다. 그렇게 찾아간 동네 작은 레스토랑이 훨씬 맛있다는 걸 잘 알기에.

 그래서 걱정이다. 외국 손님들은 과연 우리나라에서 어떤 맛을 체험하고 가는 걸까. 혹시 TV 프로나 한국 여행 책자에 나온 맛집을 찾아본 뒤 실망감만 가득 안고 돌아가진 않을까. 우연히 마주친 한국인에게 물어본다 해도 진짜 맛있는 집을 소개받을 가능성은 지극히 낮을 게다. 너나 없이 엉터리 맛집 음식에 입맛이 길들여진 지 오래니 말이다. 한식 세계화를 몇 년째 목청 높여 외치지만 별 진전이 없는 것도 혹시 우리들조차 제대로 된 한국의 맛을 모르기 때문은 아닐는지. 죽순채 요리에서 보이지도 않는 홍시 맛을 감별해 낸 ‘장금이’ 수준까진 아니더라도 진짜 맛집과 가짜 맛집 정도는 가려낼 줄 아는 혀가 절실하다.

이현 JTBC 국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