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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물과 「사각의 정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지금 한국과 일본 프로복싱 계는「가네히라」독물중독사건폭로로 벌집을 쑤셔놓은 듯 하다.
복싱을 사랑하는 팬들은『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또는『설마 그럴 수가』하면서 반신반의하고 있다.
비단 프로복싱 뿐 아니라 아마추어 각종 경기에서도 환각제사용과 승패조작이 빈번하게 있는 것은 사실이다.
환각제 복용은 선수가 거의 혼미한 상태에서 이른바『6백만 불 사나이』처럼 만들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환각제를 복용하고 출전하면 상대를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자기 몸이 부서지는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뛰어들게 되는 것이다.
특히 역도 경기의 경우는 뜻밖의 힘을 내어 쇳덩어리를 기적같이 들어올리게 되는 것이다.
이래서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등에서는 성별과 도핑(약물복용)검사를 경기전과 후에 반드시 실시하고 있다.
78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 북한역도선수가 도핑검사에 걸려 3개의 금메달을 박탈당했던 것은 좋은 본보기라 할 수 있다.
도핑과 달리 승패조작은 꼭 거액이 관련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어떤 팀이나 개인이 져주면 상당한 금액이 한 곳으로 흘러 들어가게 끔 되어있다.
흔히 프로복싱영화에서 많이 나오는 소재가 바로 이런 승패조작이다.
승패조작은 거액이 흘러 다니기 때문에 일본이나 미국프로야구 그리고 프로경륜·자동차경주, 심지어 인기 있는 미국의 대학농구에서 까지 성행하고 있다.
물론 압력과 협박 그리고 이에 따른 상당한 보수가 지불되는 것이 각본의 전부다.
개척기의 프로권투는 바로 이 같은 승패조작이 횡행하기도 했다.
이번「가네히라」사건은 우리나라선수들이 모두 독물을 먹을뻔 했다든가 또는 당했다고 하여 희생자가 되고 있다. 이런 점이 우리 복싱팬을 더욱 흥미롭고 당황하게 하고 있다.
우리 나라 복싱은 과학적이고 지능적이 못돼서인지 독물중독까지는 못해도 갖가지 수단으로 타이틀을 따보려고 애는 써보았었다.
홍수환이「자모라」와 인천에서 두 번째 대결했을 때는 링 옆에서 악을 써서 상대를 혼미하게 만들려 했고, 임재량이「에디·가조」와 싸울 때는 추위에 약하다고 생각해 한겨울에 인천체육관의 문이라는 문은 모두 열어놓기도 했다.
특히 정순현-「카르도나」전 때는「카르도나」가 아웃복싱에 능하기 때문에 작은 링을 사용했고 「카르도나」가 코너로 피해왔을 때 링 밑에서 발목을 잡아당겼다.
놀란「카르도나」가 발목잡힌 코너로 다시는 백 스텝을 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이 같은 경우는 모두 홈 링의 잇점을 최대한으로 이용한 일종의 애교라고까지 봐줄 수 있다.
그러나「가네히라」사건은 오린지에 신체기능을 마비시키는 약을 주사바늘로 넣어 링에 오르는 선수를 맥없이 만든다는 것으로 과학적이고 치밀하다.
「가네히라」는 5명의 세계 챔피언을 만들었을 정도로 일본 복싱 계의 대부이자 세계권투 계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가 교오에이 체육관 회장을 비롯, 복싱 계를 떠나게 까지 한 이번 사건이 정말 사실이라면 프로복싱 계는 큰 비극을 맞은 것이다.
프로복싱은『힘있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투쟁의 진리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노진호<부국장직대 겸 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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