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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서 잡혔어도 "용의자"취급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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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미국은 「용의자」천국인가 -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레이건」대통령에게 총질을 했다가 현장에서 잡힌 「존·행클리」(26)는 유죄판결을 받기전에는 「범인」이 아닌 「용의자」로서의 권리를 한껏 누리고 있다.
「레이건」대통령은 지난해 3궐30일 워싱턴의 힐튼호텔앞에서 「힝클리」의 총알을 맞았다. 피습현장에 있었던 사람들과 전세계의 TV시청자들은 범인이 「힝클리」라는데 의심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힝클리」는 거의 1년이 지나도록 유죄판결을 받지않았고, 그의 변호사가 무죄를 증명하려고 시도하는 용의자에 지나지 않는다.
「힝클리」사건의 변호사와 판사는 헌법상의 판례로 맞붙어 과연 어떠한 증거를 들이대야 그
의 무죄, 혹은 유죄를 입증할 수 있을까. 온갖 지혜를 다 짜내고 있다.
누가봐도 범인임이 분명한 「힝클리」가 법의 보호를 받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내용이 가장 단순하고 명백한 사건에서조차도 신속한 판결을 내릴 수가 없게끔 전문 용어로 교묘히 얽혀진 미국의 복잡한 사법게도가 그 한가지 이유다. 또 다른 이유는 아무리 하찮은 사람일지라도 그 인권이 보다 자유롭게 보호돼야 한다는 사법제도의 다른 측면때문이다. 「힝클리」 같은 범죄자도 미국 사법제도의 비능률과 인권존중정신때문에 그 명을 늘려갈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 저격범이 항상 이번처럼 보호된 것은 아니다. 1933년2월15일 「주제페·잔가라」는 마이애미에서 오픈카를 타고가던 「프랭클린·루스벨트」대통령을 향해 6발을 쐈다. 「루스벨튼」는 다행히 총알에 맞지 않았으나, 옆에 있던 시카고시장 「앤턴·체어마크」가 중상을 입은 끝에 숨졌다. 1급 살인죄로 기소된 「잔가라」는 유죄가 인정되어 3월20일에 전기의자에 앉았다. 이 경우 법행에서 처형에 이르기까지 33일 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의 유죄는 명백했고, 판결은 신속했다. 그러나 일부 여론과 전문가의 견해는 그것이 과연 정당했느냐에 대해서는 의문을 나타냈다. 일부에서는 그를 상해죄로 기소했어야 했다는 주장이고, 또 일부에서는 그의 정신착란에 의한 무죄를 주장했다. 또 현재와 같은 법적용하에서는 최소한 사형은 면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레이건」의 저격범 「힝클리」도 정신이상으로 인한 행위로 항변되고 있다. 콜로라도주의 돈 많은 석유회사 간부의 아들인 「힝클리」에게 현재 워싱턴의 유명한 변호사사무소 「월리엄즈·앤드·코널리」사의 변호사4명이 붙어 있다.
변호사들은 「힝클리」가 「레이건」대통령과 「브레디」대변인, 비밀경호원, 경찰관등 4명에게 층을 쏴 쓰려뜨렸다는 사실은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범행 당시 「힝클리」가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변호한다.
그들은 저명한 정신과의료팀을 동원하여 그의 정신이상을 증명하고자 한다.
변호사들은 지금까지 정신감정·항변서 제출등으로 재판을 성공적으로 지연시켜왔다.
「힝클리」사건은 전국적인 논쟁거리가 되고 있는데, 「레이건」자신은 지난해 9월 형사범죄 피의자가 지나치게 인권을 보호받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미국에서는 정신질환이나 결함의 결과로 저질러지는 범죄는 형사처벌이 면제되는 것이 상례다.
범죄행위에 대한 잘잘못을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행위는 처벌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최고법원도 지난20년간 형사피의자에 대한 헌법상의 보호조치를 확대해 왔다.
최근 「힝클리」의 변호팀은 연방항소심에서 중대한 승리를 거두었다.
판사는 「힝클리」의 헌법상 권리에 위배하여 채집된 증거는 불법이라고 판결, 하급법윈의 결정을 파기했다. 그 증거물은 「힝클리」가 체포된 직후에 행한 임의자백과 그의 감방에서 발견된 자술서.
그러나 판사는 진술거부권과 변호사선임권리가 있다는 점이 통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얻어진 증거물은 증거의 효과가 없다고 판시했다. 이러한 권리는 모두 미국수정헌법 제4·5·6조의 규정에 근거한다.
「레이건」은 『기소된 자의 권리와 선량한 시민의 권리가 동등해서야 되겠는가』라고 개탄했다.
여하튼 명백한 현행범인 「힝클리」의 재판지연으로 사법제도의 비능률성에 대한 「비판」과 인권보호를 위해서는 그런 일은 불가피하다는 「옹호론」이 동시에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김재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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