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기옆서 떠날줄 모르는 어머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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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어머니, 세배 받으셔요.』
맏며느리로서 처음 차려올린 큰 상을 앞에 받으신 엄마는 오빠내외가 나란히 올리는 큰절을 받으시며 몹시 흡족한 얼굴이 되신다.
세살된 조카 은영이도 할머니께 세배를 드린다면서 두발을 쭉뻗어 엎드리는 통에 모두들 배를 잡고 웃었다.
그러고 보니 엄마와 함께 한국을 떠나 이곳 미네소타 큰 오빠 댁에 온 지도 벌써 석달째가 되어 간다.
이곳에 계시는 동안 작은언니와 둘째 오빠가 결혼식을 올렸다.
큰딸 결혼식은 병석에 있는 탓으로 못 가 보시더니 이제 둘째딸과 둘째 아들의 결혼식마저도 이역에 있는 탓에 보시지 못하고 말았다.
엄마가 말씀을 못하시고 거동이 불편해지게 된 것은 지금부터 3년전의 일이다.
나이 서른 넘도록 결혼할 생각을 전혀 않던 큰언니에게 드디어 신랑감이 결정돼 혼수함을 들고오자 너무 기쁜 나머지 쓰러져 버리신 것이다.
이번에도 가뜩이나 몸도 불편한데 혼사까지 겹치고 보니 더욱 애타할 것을 우려한 아버지와 가족들이 미국에서 병원도 다니면서 경치구경도 하고 손녀딸 재롱도 받아 보라고 떠나지 않으려는 엄마를 억지로 우겨 이곳까지 오시게 한 것이다.
한국에 있을때는 멀리 띨어져 있는 큰아들이 항시 걱정이더니 정작 이곳에 오시니까 한국에 있는 식구들 걱정에 잠시도 마음을 놓지 못하신다.
결혼식이 있던 날이었다.
엄마는 눈뜨기가 무섭게 전화기 옆으로 달려가 종일 꼼짝 하지도 않고 앉아 계셨다.
아마도 결혼식이 잘 치러지고 있는지 조바심이 나기 때문이리라.
이 세상 어느 엄마보다도 우리 칠 남매를 사랑하시는 엄마이고 보면 가장 경사스러운 날에 축복을 함께 할 수 없다는 아픔이 얼마나 클 것인가.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자식 걱정으로 하루도 맘 편한 날이 없는 엄마를 볼때마다 가슴 한가운데서 뜨거운 무엇이 뭉클 치밀어 오른다.
그러면서 한편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훗날 엄마가 되면 우리 엄마처럼 해 낼수 있을까하는.
새해 첫날『미국에 와서 처음 쇠는 설』이라고 몹시 줄거워 하는 올케언니의 말을 들으면서 올해엔 꼭 엄마가 건강을 되찾으시라고 속으로 가만 빌어본다.
엄마, 이 막내달 시집갈 때는 건강때문에 멀리 떠나시는 일없이 옆에서 지켜봐 주시고 두 언니 오빠에게 못 들려준 말씀 제게는 꼭 들려 주셔야 돼요.

<미국 미네소타주 세인트폴 맨슨가2975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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