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자 좋은 곳 가길' 염원 담긴 신발 … 백제 세공술의 절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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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나주 정촌 고분 에서 발굴된 금동 신발 바닥의 문양 도안. 연꽃 아래에 디자인한 용의 얼굴은 큼직한 코와 귀, 이의 묘사가 정교하다. [사진 문화재청]

누런 벼 물결 출렁이는 나주평야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남 나주시 다시면 복암리 산 91번지. 나주시 향토문화유산 13호로 지정된 이 정촌 고분이 5세기 영산강 유역을 지배한 세력의 강대함을 입증하는 역사의 현장으로 재발견됐다. 23일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소장 이상준)는 기존에 볼 수 없었던 백제 금동 신발과 금제 귀걸이, 마구 등 여러 매장시설에서 발굴한 출토품을 내놨다.

 이날 처음 공개된 백제 시대 금동 신발은 단연 눈길을 끄는 최상품이었다. 전문용어로 ‘금동식리(金銅飾履)’라고 부른다. 이상준 소장은 “비녀처럼 신발에 붙어 있는 용머리는 현재까지 유일한 유물이며 기존에 발견된 마한·백제권 금동식리에도 이런 장식물이 부착돼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무겁고 단단한 이 금동식리는 시신을 무덤 안에 안치할 때 함께 매장하는 부장품의 일종이다.

학계에서는 백제 권력층이 영산강 유역을 장악한 마한의 실력자가 죽자 그를 치하해 내린 하사품으로 보고 있다. 이 소장은 “그간 충남 공주 무령왕릉 등에서 금동식리가 발견됐지만 부분적으로 훼손된 상태였는데 이번에 나온 정촌 고분의 금동식리는 용 모양 장식을 포함해 완벽한 상태로 출토됐다”며 “전무후무한 유물인 만큼 이 양식과 문양을 이미 특허 신청해 앞으로 여러 방법으로 활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한상 대전대 교수는 “고구려·신라는 물론 왜(倭)의 공예기술까지 아우른 빼어난 만듦새”라며 “백제의 디자인 감각과 공예기술이 총 투입된 걸작”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신발 바닥에 새겨진 용은 코와 귀, 이의 묘사 등 정면 모습을 과감하면서도 정밀하게 투각해 지금 봐도 놀랍다고 평가했다. 그동안 용 문양은 주로 측면 형태가 많았다.

 김낙중 전북대 교수는 “5세기 중·후엽에 마한 세력이 백제화의 길로 접어든 모습을 보여주는 고분과 유물”이라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신발에 새겨진 연꽃무늬, 즉 연판문(蓮瓣文)과 용의 결합이 불교적 요소를 띄고 있음에 주목했다. 신발이 지니는 상징성은 죽은 이가 내세에서 부활하길 바라는 뜻이라며 그 활달하고 시원스런 세공술이 이를 뒷받침한다고 말했다.

 이밖에 금제 귀걸이와 장신구 등은 단순하면서도 세련된 미감이 신라와 대가야 등 인접국의 기술을 받아들인 뒤 변용한 백제의 힘을 느끼게 했다. 화살통에 담겨 있는 철촉이 대량 나온 것도 드문 경우다.

 이렇게 다양하면서도 보존 상태가 좋은 유물이 긴 세월 도굴당하지 않고 1600여 년 만에 세상에 나온 까닭은 무엇일까. 지역 촌로들 증언에 의하면 이 벌집 형 고분군 위에 마을을 굽어보는 해묵은 정자가 세워져 있어 일종의 보호 장치 구실을 했다고 한다. 발굴조사를 맡은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는 내년 개소 10주년을 맞아 이 지역을 가칭 ‘용식 금니총(龍飾 金履塚)’으로 이름 짓고 복암리 일대 마한 세력의 위상과 대외교류사 복원에 힘쓰기로 했다.

나주=정재숙 문화전문기자

◆금동식리(金銅飾履)=장례에 쓰는 장식용 신. 정교한 무늬가 새겨진 금동 판(板)으로 만들었다. 삼국시대 특히 백제에서 다량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주 무령왕릉, 공주 수촌리 고분군, 고창 봉덕리 1호분 등 마한·백제권 13개 유적에서 모두 17점이 출토됐다. 망자의 넋이 더 좋은 곳으로 오르기를 바라는 후손의 염원이 신발이란 상징성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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