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칼럼] 증세 논의 제대로 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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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박세훈
가톨릭관동대학교
경제금융학과 교수

진정한 개혁은 무엇인가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선진복지국가, 경제강국의 실현을 위한 재정확대와 증세 등 국가재정의 개혁도 새로운 관점으로부터 비롯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국가경영의 핵심인 국가재정운용은 정부가 얼마만큼의 세금을 누구로부터 어떻게 징수하여, 무엇을 위해 얼마만큼을 어떻게 지출할 것인가에 대한 약속이고 전략이다. 따라서 재정의 수입은 누군가에게는 부담이 되고, 지출은 누군가에게는 혜택이 된다. 재정의 수입과 지출은 마치 따로 떼어놓을 수 없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그런데도 현재의 우리사회처럼 재정 수입과 지출을 독립적으로 다룬다면 결국은 부분은 옳지만 전체는 틀린 구성의 오류에 빠지게 된다. 서민들의 복지재원은 부자들이 부담해야 한다는 당위론에 반론을 제기하기란 쉽지 않다. 직접세의 비중이 커질 수밖에 없게 된다. 다른 한 편에서는 사회통합과 기여자수혜원칙이 강조된다. 복지에 대한 보편적 접근도 설득력을 얻게 된다. 이렇게 되면 설령 큰 폭의 재정확대와 증세가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시간이 흐를수록 복지지출은 폭증하고 경제는 오히려 침체되는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될 수 있다.

 이제는 재정의 수입과 지출을 통합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래야 비로소 재정의 수입측면에서는 성장친화적인 조세체제를 갖추고, 지출측면에서는 복지지출의 선별성과 누진성(progressivity)을 강화시켜 소득 하위계층에게 더 많은 복지혜택이 돌아가게 하면서도 재정의 건전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제프리 삭스 컬럼비아대 교수도 미국의 재정건정성 확보방안의 일환으로 복지지출의 누진성 강화를 주장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저소득층의 조세부담이 상대적으로 증가할 수 있지만, 복지혜택의 증가분이 조세부담의 증가분을 상쇄시키고도 남는다면 저소득층의 후생수준은 오히려 이전보다 더 높아지게 된다.

 통합적인 관점으로 보면 분명 경제와 복지의 공존을 위한 타협의 공간은 존재한다. 증세에 의한 추가적인 세수가 ‘강한 경제’를 위한 성장잠재력 확충과 ‘선진 복지’를 위한 소득하위 계층의 복지확충에 집중적, 균형적으로 동시에 투입된다면 재정개혁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도 가능할 수 있다. 우리사회가 재정규모 확대 및 조세체제와 복지체제의 바람직한 조합을 근간으로 하는 국가재정개혁을 타협해낼 수만 있다면, 우리도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세수는 안정적으로 확보되며 실질적인 복지혜택을 누리는 경제와 재정과 복지의 선순환 구조를 구축할 수 있게 된다.

 재정확대와 증세를 위한 사회적 대타협이 절실하다. 더 이상 우리경제의 성장잠재력을 확충하는 일에 소홀해서는 안 된다. 더 이상 우리사회의 절박한 복지수요를 외면해서도, 적게 부담하고 많이 누리는 복지혜택을 생각해서도 안 된다. 우리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일이요, 후손들에게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박세훈 가톨릭관동대학교 경제금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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