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온건파 모두 "대화는 계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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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베이징(北京) 3자회담에서 체제보장과 핵포기를 맞바꾸는 일괄 타결안을 제시한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미국의 향후 대응이 주목되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29일 "조지 W 부시 행정부 내 대북(對北)온건파는 물론 강경파도 일단 대화를 계속하는 데는 찬성한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찬성 배경은 다르다.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을 필두로 한 강경파는 북한과의 협상이 실패할 게 뻔하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그 때에 대비한 명분 쌓기 차원에서 반대하지 않을 뿐이라는 것이다. 또 부시 정부가 이라크전 이후 당분간은 다른 지역에서의 무력 갈등을 원치 않는다는 사실도 북한과의 대화 계속 분위기에 일조했다고 신문은 분석했다.

하지만 북한이 제시한 '대범한 제안(bold proposal)'을 미국이 받아들일 가능성은 현재로선 희박하다는 것이 미 언론들의 분석이다.

미 언론 보도에 따르면 북한은 베이징 회담에서 "미국이 중유와 식량을 제공하고, 북한의 체제를 보장하며, 에너지와 경제적 지원을 하면 핵 프로그램을 철폐하겠다"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국무부의 리처드 바우처 대변인은 28일 "북한 핵은 처음부터 있으면 안되는 것인데 그걸 없앤다고 대가를 지불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면서 기존 입장을 확인했다.

대가를 주지 않는다는 원칙에 대해선 강경파뿐 아니라 국무부를 중심으로 한 온건파들도 동의하고 있다.

헤리티지 재단의 발비나 황 연구원은 "미국은 북한이 요구하는 불가침 조약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면서 "하지만 북한이 먼저 핵 프로그램을 폐기하면 한.중.일.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국들과 협조해 본격적인 경제지원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한의 일괄타결 제안에도 불구하고 공은 여전히 북한에 있다는 것이 워싱턴의 인식인 셈이다.

한.미.일 3국은 곧 열릴 예정인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TCOQ) 회의를 통해 북한의 제안에 대한 공동대응 방안을 모색하고, 다음 회담의 시기와 장소 등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도 한국과 일본의 회담 참가를 적극적으로 반대하지는 않고 있어 다음번 회담은 명실상부한 다자회담의 형태를 띨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다음달 15일 워싱턴에서 열리는 노무현(盧武鉉)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북핵 해법의 중요한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북한은 "우리 측의 제안에 대한 미국의 반응을 지켜볼 것이며 만일 미국이 트릭을 쓰면 중대한 결과를 빚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의 반응이 늦어질 경우 현상 타개를 위해 북한이 새로운 도발적 행동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 한반도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워싱턴=김종혁 특파원kimch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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