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Start] "시원한 물놀이 즐거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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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스타트 번동 마을 아이들이 용인 에버랜드를 찾았다. 노란 우비를 착용한 아이들이 ‘썸머 스플래쉬’ 퍼레이드에서 쏟아지는 물을 맞으며 즐거워하고 있다. 최승식 기자

몸이 불편한 할머니와 알코올 중독인 아버지와 함께 사는 헌수(9)는 18일 밤 꿈을 꿨다.

TV에서 본 것처럼 엄마.아빠와 함께는 아니지만 시원한 물줄기가 쏟아지는 놀이공원에서 퍼레이드의 주인공이 되는 꿈이었다. 19일은 동네 친구들과 놀이동산에 가는 날이어서 잠을 설친 헌수는 아침 일찍 일어나 집을 나섰다.

서울의 첫 'We Start(위 스타트)' 시범마을인 강북구 번동의 어린이 30명이 이날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대표 박노빈)의 초대손님이 됐다. 에버랜드를 찾은 아이들은 동물원을 구경하고 물놀이 퍼레이드에 참가하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가정형편이 쪼들리자 4년 전 엄마가 집을 나가는 바람에 술에 빠진 아빠와 그늘진 시간을 보내온 헌수지만 이날은 노란 비옷을 입고 물총을 든 모습이 영락없는 개구쟁이 소년이었다.

오랜만의 나들이라 예쁜 머리끈을 하고 왔다는 주희(10.여)도 "오고 싶을 때 올 수 없었지만 오늘 너무 신나게 놀아 두고두고 기억날 것 같아요"라며 즐거워했다. 아이들 앞을 지나던 퍼레이드 행렬이 멈춰서자 어색해하던 아이들도 환호성을 지르며 다가갔다. 신나는 음악과 함께 시원한 물줄기가 쏟아지자 선생님 손을 꼭 잡고 있던 현우(7)도 양말을 벗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청각장애가 있는 탓에 항상 혼자 조용히 놀아온 현우는 신이 난 모습이었다.

아이들을 인솔한 번동 종합사회복지관의 사회복지사 김우진(29.여)씨는 "많은 어린이가 부모의 이혼.가난.장애 등의 이유로 방치돼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어려운 환경 탓에 아이들이 위축되는 게 가장 안타깝다"고 말했다.

10평 남짓한 임대아파트 5000여 가구가 모여있는 강북구 번동 일대는 지난달 서울에서는 처음으로 위스타트 마을로 지정됐다. 대도시형 위스타트 마을의 시범사례가 될 이곳에서는 기업.병원.사회단체 등 지역사회의 지원을 받아 해당 아동의 교육.복지.건강에 종합적인 지원을 할 예정이다.

강승민 기자 <quoique@joongang.co.kr>
사진=최승식 기자 <choiss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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