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티즌 댓글, 블로그 일기 모은 책 일본서 베스트셀러 행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9면

인터넷에 띄워진 댓글이나 블로그를 모아 펴낸 책들이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극히 현실적인 잔잔한 일상사를 소개한 수준인데도 100만 권이 넘게 팔린 책까지 나왔다. 주 독자층은 그동안 책을 멀리하고 인터넷 세상에 흠뻑 빠져 있던 젊은 세대다. 활자 매체에서 인터넷으로 이동하는 시대에 인터넷상의 이야기들을 활자로 엮어내는 '역발상 출판 비즈니스'가 뜨고 있는 것이다.

◆ 인터넷 게시판 상담 글이 밀리언셀러로=일본의 대형 출판사인 신초샤(新潮社)는 21일 인터넷에서 선풍적 인기를 모은 동명 연애소설 단행본 '덴샤오토코(電車男.사진)'의 발행 부수가 101만5000권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 책은 지난해 10월 발간됐다. 지난해 출판된 책 중 100만 권을 넘어선 것은 이 책이 유일하다. '덴샤오토코'는 '전철 남자'란 뜻이다.

이 소설은 전차 안에서 술 취한 중년 남자에게 희롱당하는 여성을 도운 22세의 청년이 인터넷 게시판에 상담 글을 올리는 데서 시작된다. 재택근무하는 시스템 엔지니어인 주인공은 연애에 관해선 숙맥이다. 전차 안에서 도움을 받은 여성이 사례라며 고급 브랜드인 에르메스의 티컵을 보내자 주인공은 안절부절 못한다. 주인공은 고민 끝에 이 여성과의 데이트에 성공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구하는 글을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다. 주인공은 '식사는 어디서 하는 것이 좋은가' '어떤 옷을 입고 데이트에 나가야 좋은가' 등의 조언을 구한다. 누리꾼들은 주인공에게 온갖 지혜를 짜내주고 때로는 혼도 낸다. 남자 친구에게 차인 간호사가 여성의 입장에서 약속시간 정하는 방법 등을 설명하는가 하면, 어떤 샐러리맨은 젊은 여성들이 좋아하는 남성 패션 소개 사이트를 알려준다. 이처럼 다양한 사연과 충고의 댓글이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오고 이들의 관심 속에 '덴샤오토코'는 조금씩 그녀와의 거리를 좁혀 나간다는 줄거리다.

이 소설을 토대로 제작돼 지난 4일 개봉한 같은 이름의 영화도 이미 관객 100만 명을 돌파했다. 이 소설은 또 드라마로도 제작돼 다음달 중 후지TV의 전파를 탈 예정이다.

◆ '블로그 책'들도 큰 인기=최근 후쿠오카(福岡)에 사는 한 남성 샐러리맨이 자신의 처절한 결혼생활을 독백 형식으로 털어놓은 블로그가 '실록 오니요메(鬼嫁) 일기'란 책으로 출판돼 10만 권 넘게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오니요메'란 대략 '호랑이 마님'이란 뜻이다. 처의 무자비한 '남편 다루기'에도 참고 또 참아온 남편에게 전국 각지에서 성원이 답지한 것이다. 또 자신의 출산 과정을 묘사한 30대 여성의 '후쿠다 가요의 그림일기'란 블로그 책도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요즘 일본 어느 서점을 가도 "대인기 블로그가 책으로 나왔습니다"란 선전문구가 눈에 띈다. 블로그 서적을 전문적으로 출판하는 아베바북스의 관계자는 "블로그를 인터넷에서 읽으면 되지 왜 굳이 책으로 내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훌륭한 블로그는 책으로 읽어도 재미있다"고 설명했다. 요미우리(讀賣)신문은 "한 화면에서 차단되고 마는 인터넷의 세계를 한 권의 책으로 집약해 보려는 욕구가 관련 책자의 판매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고 해석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