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형'수요 많은데 집값 잡힐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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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정부가 그동안 현실에 맞지 않는다며 배격했던 판교 공영개발론을 진지하게 검토하기 시작했다. 판교 공영개발론은 '아파트값 거품빼기 운동'을 지속적으로 해온 경실련을 필두로 민주노동당과 김양수 한나라당 의원 등이 제기했다. 정부는 이를 무시했으나 지난 17일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 주재로 열린 부동산 정책 간담회 이후 적극 검토로 돌아섰다. 25.7평 초과 판교 아파트의 높은 분양가가 분당.용인 등 인근 집값을 자극하자 분양가를 낮출 수 있는 공영개발이 대안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공영개발이 자칫하면 기존 중대형 주택의 희소성만 높여 강남 등지의 집값 급등을 부채질할 수 있고, 청약예금 가입자나 건설업체의 불만도 커지는 등 부작용이 적지 않을 것으로 우려한다. 한마디로 시장의 기대를 거스르는 정책이라는 것이다.

◆ 공영개발이란=국가.지방자치단체나 정부투자기관(토공.주공 등)이 택지 개발, 주택 건설의 주체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공공개발'이라는 용어도 공공기관이 개발주체라는 점에서 공영개발과 비슷한 의미로 쓰인다.

택지는 이미 1980년 초반 택지개발촉진법 시행 이후 택지개발지구에서 공영개발 방식으로 조성되고 있다. 판교의 경우 성남시와 토공.주공이 지난 17일 25.7평 이하 택지 공급을 마쳤다. 따라서 최근 제기되는 공영개발론은 건물에 관한 것이다. 민간건설업체가 토공 등에서 땅을 사들여 건물을 짓고 청약자들에게 분양하는 대신 주공 등이 직접 택지를 조성하고 거기에 직접 건물을 지은 후 매각하거나 임대하는 것이다.

토공 등이 건설업체에 택지를 임대하면 주공이나 건설업체가 집을 지어 건물만 분양하는 것도 공영개발에 해당한다. 토공 등은 땅 임대료를 받을 수 있다. 건물을 분양받은 사람은 땅 사용료를 내고 건물만 사고팔 수 있다. 국유지나 시유지에 집을 짓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정부가 구상하는 공영개발은 분양 아파트보다는 소형에서부터 50평형대까지 다양한 평형의 20~30년 장기 임대 아파트에 비중을 둔 것으로 추정된다.

◆ 정부는 그동안 왜 배격했나=경실련은 "판교처럼 입지조건이 좋은 곳에 30평이 넘는 공공임대주택을 건설해서 공급하면 집값도 잡고 주거 안정도 꾀할 수 있다"며 "판교 공영개발을 통해 공공임대주택을 획기적으로 늘리면 주택에 대한 개념을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이에 대해 건설교통부는 지난 3일 "일부 긍정적인 면이 있을 수 있으나 시행상 부작용이 더 많다"고 공식 반박했다. 임대주택뿐 아니라 분양주택 등 다양한 주택 수요를 충족할 수 없어 강남 등 인근지역 중대형 주택의 가격불안을 초래할 수 있고 공공기관이 모든 주택을 건설.임대.관리해야 하므로 공공부문이 비대해지고 손실이 발생할 경우 재정에서 메워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금도 공영개발을 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건교부 관계자는 당시 "현재도 택지지구에서 주택용지의 45%를 임대용지로 공급해 가구수 기준으로 55~60%가 임대주택으로 건설되고 있다. 여러 부작용을 감수하며 굳이 100% 공영개발을 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17일 간담회에서 공공부문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판교 25.7평 초과 택지공급을 보류시키자 이를 적극 검토한 것이다. 공영개발은 분양가가 낮고 임대주택 비중이 높아져 인근 집값을 자극하는 효과가 거의 없고, 택지를 구하기가 쉽지 않아 차질을 빚는 임대주택 공급 목표도 쉽게 달성할 수 있게 해준다. 공공부문이 개발하므로 분양원가 공개를 요구할 수도 있다.

◆ 역효과 우려=공영개발 방식이 과연 집값을 안정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판교에 중대형 아파트 공급을 늘리기보다 임대아파트를 더 넣을 경우 강남권 등 기존 주택의 가격 급등을 부채질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양해근 부동산뱅크 팀장은 "강남권 대체 신도시로 거론되는 판교를 임대 단지로 조성한다면 강남권과 분당 일대 중대형 아파트 가격은 희소성을 발판으로 더욱 오를 것"이라며 "판교에 중대형 아파트 공급을 늘려야 될 판에 임대아파트로 조성한다는 것 자체가 과연 현실성이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분양 아파트의 경우에도 이미 주변 집값이 평당 2000만원을 웃도는 상황에서 분양가만 떨어뜨린다면 판교발 역풍(집값 상승)은 오히려 더욱 강해질 공산이 크다. 정부가 개발방식을 또다시 바꿀 경우 수요자의 혼란도 불을 보듯 뻔하다. 25.7평 초과 주택 청약을 학수고대하던 청약예금 가입자들은 기대 상실로 불만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허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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