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만에 재연한 희대의 은행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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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은행돈을 자기금고 돈처럼 꺼내쓰던 「검은배짱」박영복망령이 8년만에 되살아났다.
27일 검찰에 구속된 이순덕씨 (51·여·요정「학산」주인)등 7명은 74년 74억원 부정대출사건으로 박씨가 구속될때에도 손잡고 일하던 박영복망령의 뿌리들.
행집행정지중 병실에 누워 이 뿌리들로 하여금 금융기관의 허점을 이용, 제2의 일확천금을 노렸던 그의 천재적(?) 사기술에는 검찰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요정마담 이씨는 74년사건이전 경기가 좋을때 박씨가 차려준 요정「학산」을 경영하는 박씨의 내연의 처.
박씨는 병실에 누운채 이마담을 내세워 사기극의 기초작업인 은행거래를 텄다. 이씨는 명동등 사채시장의 사채 6억원을 끌어들여 서울신탁은행 종로4가지점에 예금했다. 이수법은 74년 박씨가 은행을 사기했을 때와 똑같은 것으로 예금유치에 혈안이 된 은행으로서는 6억원을 내놓는 이씨를 칙사대접한 것은 물론이다.
박씨는 자신의 운전사인 조장년씨(38)를 시켜 서울한남2동의 동장직인과 계인·소인등을 위조, 조씨의 인감증명서를 복사해 「이영국」이란 가명의 인감증명서를 변조해냈다.
이때부터 박씨는 「이영국」이란 유령인물로 변신했고 차리는 회사마다 회장자리에 앉아 「이회장」으로 통했다.
박씨가 그동안 병실에서 차린 유령회사는 아풍·목산·유현·나호·이조산업등 모두 5개.
그중 아풍물산에는 자신이 이영국이란 가명을 써 회장으로 앉았고 대표이사 사장에는 내연의 처 이씨가 경영하는 「학산」의 경리직원 김두찬씨(48·구속)을 앉혔다. 또 목산물산 대표이사에는 자신의 대구 D고교 동기동창인 신동배씨(46·구속), 회장에는 이재용씨(50·수배중)를 앉혔고 나호산업대표에는 신박호(수배중)·김정수(47·재미·수배중)씨등을 앉혔다.
특히 김정수씨는 역시 D고교 동기동창으로 74년 박씨가 구속될때 대출을 맡았던 당시 서울은행 차장으로함께 구속됐던 인연이 있어 무척 친한 사이였다.
80년5월 1차로 박씨는 담보보다 신용을 중시하는 「신용보증기금」을 범행대상으로 물색했다. 마침 신용보증기금 대전지점장 성기언씨(47)는 김지수씨와 전서울은행 입행동기로 친한 사이여서 성씨에게 접근했다.
나호산업의 유령장부와 위조된 신용장등에 속은 성씨는 나호산업 명의로 김씨에게 4억5천만원을 지급보증해주고 3차례에 걸쳐 3백50만원을 뇌물로 받았다.
신용보증기금은 기업체의 신용도를 조사, 지급보증서를 발행해주는데 이 지급보증서가 첨부된 어음은 부도날 우려가 없기 때문에 은행·금융기관에서 마음놓고 어음할인을 해줘 보증수표와 마찬가지였다.
81년3월 하순에는 역시 유령회사인 유현산업대표 변종구씨(수배중)를 내세워 대구지점장으로 전근한 성씨에게 사례비 50만원을 주고 3억5천만원의 지급보증서도 받아냈다. 8억원상당의 지급보증서를 이용, 박씨일당이 대구투자금융등 8개금융기관에서 어음할인의 방법으로 받아낸 돈은 2억1천만원으로 밝혀져 있다.
박씨는 또 81년6월22일 그동안 은행에서 신용을 쌓아온 내연의 처 이씨를 내세워 서울신탁은행 종로4가지점에서 아풍물산명의로 담보없이 8백70만원을 신용대출을 받아내기도 했다.
물론 웬만한 은행원이면 얼굴을 알기 때문에 이때 박씨 자신은 은행근처에는 얼씬도 안했고 목산물산 대표로있는 신동배씨가 앞장섰다. 은행측은 6억원의 예금을 유치해준 「신용」 을 믿고 의심없이 대출을 해주더라는것.
은행실정에 밝은 박씨는 김정수씨와 짜고 이밖에도 이혜두씨(58) 소유의 부동산을 담보로 2억4천만원을 대출했다. 이부동산은 서울석곶동323의3 대지2백23평·건평5백평짜리 5층건물로 싯가3억5천만원짜리였다. 건물주인 이씨에게는 대출액을 절반씩 나눠쓰고 50개월간 이자를 박씨측이 물겠다고 약속, 1억2천만원을 받아냈다.
그러나 이에대한 이자를 갚지 못해 은행측이 건물주 이씨에게 경매처분을 통보하자 속은 것을 알게된 이씨가 검찰에 고발해 들통이 난 것.
박씨가 지금까지 형집행정지로 풀려나온 것은 두차례. 두번 모두 심한 당뇨에 의한 실신과 복수가 차는 질병때문이었다.
검찰은 박씨는 형집행정지중에도 금융기관의 신용조사등 피치못할 경우엔 자유스럽게 병원밖 출입을 한것으로 밝혀냈다.
그는 중병의 환자가 형집행정지중엔 경찰의 24시간 감호없이 수시 관찰만 있다는 사실도 철저히 이용한셈.
74년당시 박씨에게 은신처를 제공했다하여 매스컴에 등장했던 이마담은 박씨가 한참 돈을 물쓰듯 할 때 사귀었던 요정계의 거물.
그러나 재수감된 박씨는 『나는 모른다. 나도 김정수에게 속은 피해자다』라며 묵비권을 행사하고 모든것을 미국으로 달아난 공범 김씨에게 미루고 있다.
박씨는 이밖에 대출을 받아 이자를 안내면 들통이 날것이 뻔한데 모두 김씨가 챙겨 미국으로 달아나 못갚는 것이라고 변명했다.
과연 박씨의 주장대로 사기의 천재 박씨가 김씨에게 이용만 당하고 속아 넘어간 것일까. <고정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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