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의 인권과 국민의 알 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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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앞으로는 법정에 수의를 입고 서있는 피고인의 모습은 신문·방송에서 거의 찾아볼수 없게됐다. 민사사건에 있어서의 당사자들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대법원이 피고인등의 인격권보호를 위해 『법정에서의 방청·촬영등에 관한 규칙』을 개정, 피고인등의 사전동의가 있는 경우에만 재판장은 원칙적으로 촬영·녹화·중계방송등을 허가할 수 있도록 했기매문이다.
외국의 경우도 대부분 법정안의 촬영이나 녹화등은 금하고 있다. 미국이나 영국·프랑스는 사법절차 진행중의 촬영이나 방송은 절대 못하도록 법이나 규칙으로 명문화하고 있다. 특히 영국은 공표할 목적으로는 법정안의 초상화나 사생조차 금하고 이를 위반하면 50파운드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벌칙규정까지 두고 있다. 독일은 방송용 녹음이나 녹화·영화촬영은 법으로 금하고 있으나 사진촬영은 재판장이 피고인의 동의를 얻은 때는 가능하다. 이번에 대법원이 개정한 규칙은 일본의 그것과 흡사하다. 다만 일본에서는 법정안의 속기조차도 재판장의 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속기를 규제하는 규정이 없을 뿐이다.
굳이 확정판결까지는 무죄로 추정한다는 헌법조문이나 자기의사에 반해 촬영을 당하지 않을 인격권·초상권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피고인의 인권보호에 사법부가 신경을 쓰게된 것은 좋은 일이고 이의가 있을수 없다.
그러나 사실은 73년에 제정한 규칙, 『재판장의 사전허가』등의 조문만으로도 운영의 묘를 살렸으면, 이를 개정하는 번거로움은 피할 수 있었고 적절히 국민의 알 권리와 피고인의 보호받을 권리를 조화있게 행할 수도 있었다.
이번 규칙개정의 계기는 최근 윤상군 유괴사건, 윤노파피살사건, 하영웅형사사건이 크게 보도된 때문이라고 들린다.
윤상군사건은 첫공판에서 주영형피고인이 가죽수갑까지 찬채 진술하는 모습이 보도됐고(형사소송법 280조에는 공판정에서는 피고인의 신체구속을 금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미성년자인 공범의 모습이 비쳤다. 또 무죄가 선고된 윤노파사건의 고숙종피고인의 얼굴은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다. 하영웅형사는 선고 때 재판부의 실수로 수갑을 차고 판결이유를 들었다.
이 광경을 보도를 통해 본 대법원판사들이 우려를 나타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규칙개정 자체가 피고인의 인권을 보호해 준다고 생각하는 것은 난센스다.
기존의 규칙으로도 충분히 가능했던 것을 그동안 법관들이 소홀히 해왔고 피고인들에게 수갑을 채운채 재판을 진행하는 것을 예사로 여기지 않았는가. <권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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