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윷 놀이판』은 민속놀이를 감칠 맛있게 형상화|『버스를 기다리며』…투박해도 질긴 생명력 지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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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다시 선을 맡는다. 이 난이 처음 생겼을 때 선을 했었는데 그 동안에 질량으로 크게 향상되고 있음을 지켜보아 왔다.
뽑는 사람으로서는 낯익은 이름보다는 새로운 이름을 만날 때가 더 반갑고 낯익은 이름이더라도 작품이 눈에 띄게 나아졌을 때는 더 없이 기쁘다.
새로운 사람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서 거듭 뽑히지 않는다 해도 꾸준히 작품을 투고해서 선자와의 교통을 갖는 것은 좋은 일이다.
「윷 놀이판」은 날로 잃어져 가는 우리의 민속놀이를 감칠맛 있게 형상화하고 있다. 시조는 우리 것으로 여러 특징들을 지니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감칠맛>이 또 빼 놓을 수 없는 한 요소이기도 하다.
「매화사」의 김벽파씨는 그의 솜씨로는 많이 처진 작품을 내놓고 있다. <긔 아니>의 고투나 <방실 방실><입설 입설> 등의 의태어의 남용도 매우 거슬린다. 분발을 바란다.
「조반」은 아침 밥상에서 봄을 느끼는 생활의 공간을 다룬 것이 좋고 <목을 미는 아지랑이>에서 더욱 재치가 보인다.
「우수」역시 계절을 다룬 작품으로 군더더기 없이 할말을 담뿍 끝내는 간결미가 마음을 끈다. <잘 씻긴>과 <시 한 방울>도 살아 움직인다.
「버스를 기다리며」는 투박한 듯 하면서 질긴 생명력을 내뿜고 있다. 시어의 낱낱이 골자진 것 같지 않으면서 설득력을 갖고 있는 것은 시를 생활의 내부에 깊이 꽂고 있기 때문이다.
「불암산에서」는 산 위에서 서 볼 수 있는 것은 산이 아닌 좀 더 넓고 먼 시공일 것이다. 그런데 지은이는 <바위로나 살고싶다>로 귀중한 종장 끝 귀를 두 번이나 허비하고 있다. 다시 생각해 보기를.
「입춘일기」는 대체로 어긋나는 것이 없이 쓴 것 같지만 표현에서 새 맛을 찾을 수 없고 좀 더 창의적인 쪽에 눈을 떠야겠다.
「이월」은 계절감각의 시적 형상화에서 탁 트이게 내놓는 것이 없다. 둘째 수에서 바다를 끌어들인 것도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이근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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