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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 이상한 사람 만나면 '36계 줄행랑'이 상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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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1594~96)가 1594년에서 1596년 사이에 그린 ‘나르키소스(나르시스)’. 누구나 어느 정도의 자기애(自己愛)가 있지만 병적인 자기도취자(narcissist)는 남과 그 자신의 인생을 파멸시킨다.

대선 때가 되면 들리는 말이 있다. ‘만약 상대편 정당이 집권하면 이민 간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세상은 이미 모든 나라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미국화’됐다. 모든 나라가 미국이다. 어느 나라로 이민을 가든 거기도 ‘미국’이다. 미국식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하다 보면 다 비슷하다.

 전통 사회에서 미국식 사회로 바뀐다는 것은 자유와 평등을 최고의 가치로 삼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두 가치는 또 하부 가치를 생산한다. ‘구타·폭력은 절대 안 된다’ ‘성희롱도 절대 안 된다’와 같은 가치다.

 전통사회에서는 “매를 아끼면 자식을 망친다”는 말에 설득력이 있었다. 같은 말이 프랑스어(Qui aime bien, ch<00E2>tie bien.)에도 있고 영어(Spare the rod and spoil the child.)에도 있다. 전 세계 어느 나라나 20세기 초반까지는 소위 ‘사랑의 매’가 허용됐다. 지금은 아니다. 사법처리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또 불과 20년 전이라면 허용되던 직장 내 음담패설(EDPS이라고도 불리던…)도 마찬가지다. ‘단지’ 언어를 통한 직장 내 성희롱도 이제는 징계 대상이다. 영미권에서도 성희롱(sexual harassment)에 대해 민감해지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말부터다.

『위험한 사람들』의 영문판(왼쪽)과 우리말 번역본 표지.

 미국 사회는 직장 내의 ‘일반’ 폭언에 대해서도 민감해지고 있다. 직장 동료를 괴롭히는 직원은 해고될 가능성이 커졌다. 부하 직원에게 재떨이를 던진다든가, “그것도 머리라고 달고 다니느냐”는 식의 폭언은 점차 우리나라에서도 사라지고 있다. 그만큼 인권 의식이 점점 더 강화되고 있다.

 미국연방수사국(FBI) 프로파일러 출신인 조 너바로가 쓴 『위험한 사람들(Dangerous Personalities)』(2014)의 원래 용도는 ‘나와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해 주변의 잠재적인 범죄자를 가려내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한데 이 책을 읽다 보면 ‘대한민국 전 국민이 ‘위험한 사람들’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아직 미국 사회와 한국 사회 사이에는 간격이 있다. 지금은 정상 범위 내에 들어가는 언행도 언젠가는 비정상적으로 취급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이 책이 암시한다.

 『위험한 사람들』에는 네 가지 유형의 ‘위험한 사람들’을 판별할 수 있는 그들의 평소 언행 체크리스트가 나와 있다. 체크리스트는 희생자들의 직접적인 증언을 바탕으로 만든 것이다. 체크리스트의 항목들은 ‘위험한 사람들’ 식별법을 알게 해줄 뿐만 아니라 ‘바로 내가 남을 괴롭히고 있지는 않은지’에 대한 자기 성찰의 기회를 준다.

 ‘잠재적인 범죄자’에는 여친·남친, 아내·남편, 부모, 직장 동료, 옆집 사람, ‘우연히 거리에서 마주친 사람들’ 등 모든 사람이 포함된다. 누구나 다 성격상 결함이 있다. 하지만 ‘위험한 사람들’은 남의 인생을 망치는 사람이다. 누구나 가끔씩 이상한 행동을 한다. 하지만 ‘위험한 사람들’은 항상 그렇다. 저자는 “우리는 우리가 반복적으로 하는 행동의 합(合)이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인용한다. 미국 범죄학자들에 따르면 감옥에 가는 범죄자는 범죄자 중 1%에 불과하다. 내게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다.

 ‘위험한 사람들’의 네 유형은 ▶나르시시스트(narcissist) ▶감정적으로 불안정한 사람들(the emotionally unstable) ▶편집성 인격장애자(paranoiac) ▶포식자(predator·psychopath)다. 또한 이들 네 유형이 복합된 유형(combination)도 있다. 여러 정신장애가 복합되면 더 위험해진다.

 이 책의 6장은 위험한 사람들에 대처하는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한다(우선 저자는 이 책의 효용이 제한적이며 반드시 전문가의 상담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FBI 베테랑인 저자가 제시하는 최고의 제언은 ‘36계 줄행랑’이다. 여의치 않으면 피하는 게 최고다. 거리를 둬야 한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은 나를 괴롭히는 사람들이 언젠가는 바뀔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번만, 이번만’하다가 험한 꼴을 당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그의 경험에 따르면 ‘위험한 사람들’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왜 인격장애자들의 희생양이 되는 것일까. 너바로는 ‘개구리를 익히는 법’을 예로 든다. 개구리를 뜨거운 물에 넣으면 뛰쳐나오지만 서서히 물을 끓이면 못 빠져 나온다. 푹 익은 개구리처럼 되지 않으려면 관찰해야 한다. 사람들은 그냥 보기만 하지 관찰은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끔찍한 범죄 사건이 터진 후 범죄자의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특이점이 없었다” “나이스(nice)한 사람이었다”는 반응이 의외로 많다. 너바로는 ‘나이스(nice)’한 것과 ‘선량(good)’한 것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또 범죄자들은 자신을 위장해 ‘괜찮은 사람’으로 인정받는 술수에 능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게 아니라 어떤 목표를 위해서다.

 너바로는 루이 파스퇴르가 말한 “운은 준비된 사람의 편이다”라는 말을 인용한다. 위험한 사람을 판별해 내는 최소한의 지식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너바로가 제시하는 한 가지 요령은 ‘느낌’을 믿는 것이다. 어떤 대상에 대한 느낌이 뭔가 안 좋다면 그 느낌은 우리 내면이 우리 의식에게 보내는 경고음이라는 것이다. 전혀 모르는 낯선 사람들의 표적이 되지 않으려면 주위를 적절히 살피며 당당하게 걸어야 한다. 범죄자는 무방비 상태인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Joe Navarro

조 너바로   미국 연방수사국(FBI)에서 25년간 대적첩보(counterintelligence) 특별수사관으로 활동하며 FBI 내에서 ‘인간 거짓말탐지기’로 불렸다. 현재 보디랭귀지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FBI와 미국 중앙정보국(CIA)에서 대(對)테러 요원과 스파이 전담 요원에게 자신의 기술을 전해주고 있다. 세인트레오대 겸임교수며, 국제 협상과 비즈니스 컨설턴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TV에도 단골 출연하고 있다. 다른 저서로는 『FBI 행동의 심리학』 『우리는 어떻게 설득 당하는가』 등이 있다.

김환영 기자

김환영 기자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중앙일보 논설위원 겸 심의실 위원이다. 저서로 『세상이 주목한 책과 저자』『하루 10분, 세계사의 오리진을 만나다』『아포리즘 행복 수업』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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