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산 털어 7남매 공부시키고 나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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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올해 칠순을 맞이하시는 친정어머님은 왜 그렇게 더욱더 늙어 보이시는지,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해준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뒤에는 더욱 더 쓸쓸하게 보이시고 먼 산을 자주 쳐다보는 버릇도 생겼다고 하신다.
큰 올케 언니와 마음이 맞지 않아 세째 아들 내외가 모시고는 계시지만 처음엔 우리도 어머님이 세째네 집에서 기거하시는 것이 몹시도 불만이었는데 그래도 어머님이 아주 마음 편하게 계시는 것을 보면 참 다행스런 일이다.
그러니 큰 오빠께서 어머님을 뵈올 때마다 죄스러운 마음으로 어쩔 줄 모르시는 것을 보면 정말 장남은 역시 짐이 무거움에 틀림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7남매를 시골에서 농사지으시며 공부시키시느라 집에 남아있는 것이란 보잘 것 없는 가재도구들뿐이다. 우리가 학교에 다닐 때 등록금을 내기에 너무 벅찼을 땐 으레 논과 밭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기 일쑤였으니 시골에서는 우리 부모님을 도리어 나무라고 꾸짖기까지 했다고 한다.
가산을 탕진하면서까지 자식들을 공부시켜서 무엇 하느냐고 하지만 그 결과로 자식들은 잘 살게되고 어머님께 돌아온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는 것 같다.
이마에 주름살은 세어볼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그 어머님의 거룩함을 며느리의 입장에서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만 있다면 시어머님을 큰집에서 작은 집으로 들어 가시게는 하지 않았을 것 같다.
아들 공부시키시느라 애지중지하시던 재봉틀까지 다 팔아 넘기시고 대궐 같은 시골집도 아낌없이 남의 손에 넘기시고 셋방살이까지 하셨던 어머님의 마음을 큰 올케 언니는 알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 조금은 편안하게 모시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지만 딸은 역시 출가외인이란 말인가. 어쩌다가 딸집에 오실 적엔 하룻밤도 지새우지 옷하고 그냥 돌아가 버리신다.
그래도 아버님께서 옆에 계실 적에는 저렇게까지는 쓸쓸하게 보이지 않았는데. 홀로 계시는 어머님을 뵈올 적마다 어느 한쪽이 텅 빈 것 같은 가슴 뭉클함을 느낀다.
나이가 들면 어린아이가 된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그 말의 뜻도 이해가 가는 것 같다. 나이가 많으신 할아버지·할머니들을 보면 어딘가 모르게 어린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 같기 때문이다.
잡수실 것을 드리면 아이들처럼 마냥 좋아하시고 얼마 되지 않는 용돈을 드리면 그렇게 기뻐하실 수가 없다.
하지만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기란 그리 쉬운 일같이 생각되지 않는 것은 나 역시 불효하기 때문인가 보다.
사소한 일들에 얽매여 찾아 뵙지 못하고 뒤로 미루다보면 일년에 부모님을 찾아 뵙는 것은 겨우 손가락으로 셀 정도이니 말이다.
오늘 어머님의 칠순 생신을 맞이하여 우리 스스로가 본보기를 보임으로써 자식들에게도 큰 영향이 미치리라 생각해 본다.
요즘 노인복지 운동이 한참이지만 진정 노인을 위함은 물질적인 것보다는 따뜻한 마음이 더욱더 절실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우리도 이게는 점점 늙어 가는 것을 생각할 매 새삼 노인이란 단어에 친밀감을 느껴본
다. 전영자<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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