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만원 거절한 경찰 "칭찬해주니 쑥스럽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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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남대문 경찰서 이경호 경장

"당연히 거절해야 하는 것인데, 칭찬을 해 주시니 쑥스럽습니다."

40대 여성 절도범이 건넨 거액의 사건 무마비를 일언지하에 뿌리치고 이 절도범을 구속한 서울 남대문 경찰서 소속 이경호(37)경장은 20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당연히 해야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시종 겸손한 자세를 보였다.

이 경장은 19일 서울시내 대형 백화점에서 잠복근무 중 바지를 훔치던 장모(47.여)씨를 붙잡아 '한 번만 봐주면 2000만원을 주겠다'는 제안까지 받았지만 이를 단호히 뿌리쳤다.

이 경장이 달콤한(?)제안을 받게 된 경위를 이렇다.

주말을 맞아 손님들의 발길로 붐비던 백화점에서 잠복 근무 중이던 그는 혼잡한 틈을 타 한 40대 여성이 계산도 하지 않은 바지를 쇼핑백에 슬쩍 집어넣는 장면을 목격하고 이 여성을 체포했다.

'이미 계산한 것'이라고 우기던 이 여성은 추가 조사를 위해 1층 안전실로 가던 중 사람이 덜 붐비는 복도에서 이 경장의 주머니에 50만원 수표 한 장을 넣었다.

이 경장은 그러나 "이러면 뇌물공여 혐의가 추가된다"고 여인에게 알리고 수표를 압수물로 수거했다.

처음 50만원으로 시작됐던 제안은 "어차피 쓰게 될 돈이니 변호사 선임비로 들어갈 2000만원을 주겠다"며 2000만원으로 늘어났으나, 이 경장은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냉정하게 거절했다. 경찰 조사결과 이 여성은 통신업체 대리점 4 ̄5개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20일 이 여성에 대해 절도 및 뇌물공여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 경장은 이날 "피해액은 그렇게 크지 않지만, 동종 전과가 여러개 있어서 구속영장을 신청한 것으로 알고있다"면서 "전과 탓에 구속될 것을 알고 거액의 금품을 제안한 것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평소 근무 중에 봐달라는 사람은 많지만, 돈까지 내민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웃었다.

7살난 아들을 둔 이 경장은 "많지 않은 살림이지만, 옳지 않은 일을 묵인하고 돈을 받는 것은 참 경찰의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집사람도 돈을 받으면 큰 일나는줄 안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 경장은 지난해에만 40여명의 절도범을 붙잡아 '절도범 전문'으로 통한다.

올해 들어서도 벌써 20여명이 넘는 절도범을 검거하는 등 혁혁한 성과를 거뒀다.

이 경장과 같은 지구대 소속인 윤재춘 경사는 "이 경장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일하는 모범적인 경찰"이라며 "뛰어난 검거실적은 물론 궂은 일도 마다 않는다"고 칭찬했다.

한편 네티즌들은 "이 경장같은 경찰이 있어 마음이 흐뭇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중앙일보 인터넷 사이트에 글을 남긴 김민철씨는 "썩을때로 썩은 공무원 세계, 특히 경찰관 중에 이런 사람이 있다니 마음이 뿌듯하다"며 "앞으로도 계속 수고해달라"고 당부했다.

네티즌 이재성씨도 "이경호 경장의 올바른 자세에 경의를 표한다"며 "돈이면 다 해결된다는 식의 사고방식을 가진 이 여자가 꼭 실형을 살도록 해달라"고 주문했다.

이수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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