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씨, 1998~99년 대우 침몰 직전 당시 여당 인사에 '돈가방 로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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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중(69.얼굴)전 대우그룹 회장이 1999년 출국하기 전 대우의 침몰을 막기 위해 정치권에 로비를 시도했던 사실이 확인됐다. 19일 발매된 '월간중앙' 7월호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이 로비 대상으로 삼았던 이는 당시 집권당인 새정치국민회의의 제2정책조정위원회 위원장(이하 제2정조위원장)이었다.

대우가 몰락하던 시기의 제2정조위원장 자리는 세 사람이 차례로 맡았다. 장영달 열린우리당 중앙상임위원(98년 3~8월), 박광태 광주시장(98년 8월~99년 4월), 이재명 전 민주당 의원(99년 4~7월)이다.

당시 여권의 핵심 당직자인 C씨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은 이들에게 각각 거액을 제시하며 '대우를 잘 봐달라'고 부탁했다. 이들 중 장 의원과 박 시장은 로비를 뿌리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전 의원은 이 문제로 2002년 대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월간중앙'이 장 의원과 박 시장에게 실제 이런 로비 시도가 있었는지 문의한 결과 그들은 사실임을 확인해 줬다. 장 의원은 "제2정조위원장 시절 수 차례 만나자는 제안을 거절하다가 물러난 뒤 수석 부총무로 자리를 옮긴 지 얼마 안 된 시점에 김 회장 쪽에서 연락이 와 힐튼호텔에서 만난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4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김우중으로부터 돈 받은 정치인은 정계를 떠나야 한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었다.

또 박 시장 역시 비서관을 통해 "당시 그런 일이 있었다. 하지만 돈은 거절했다"고 언급했다. 박 시장은 당시 정권의 핵심 실세였던 A씨의 전화를 받고 약속장소인 힐튼호텔에 도착했는데 그 자리에는 A씨도 동석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A씨는 김 전 회장과 정치권 인사를 중간에서 연결하는 역할을 자주 한 인물로 지목되고 있다. 이에 대해 박 시장은 "오래된 일이라 A씨가 있었는지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며 즉답을 피했다.

김 전 회장이 주요 로비 대상자를 만난 장소는 주로 집무실 겸 정.관계 로비 장소로 알려져 있는 힐튼호텔 23층이었다. 힐튼호텔 꼭대기인 이곳은 '펜트하우스'로 불렸다. 김 전 회장은 자동차 키와 차량 번호를 물어본 뒤 미리 준비한 '가방'을 차 트렁크에 싣게 하는 방식을 취했다고 한다.

고성표 월간중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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