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up] 닛산 시가 사장 해외 첫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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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산은 일본에서 모범적으로 구조조정을 한 업체로 꼽힌다. 1999년 프랑스 르노에 팔릴 때 6800억 엔의 적자를 기록했던 닛산은 그 다음해부터 흑자 행진을 계속했고 지난해엔 5100억 엔의 흑자를 냈다. 사상 최대 규모다. 르노 인수 전 2조1000억 엔에 달했던 부채도 지난해 다 갚았다. 닛산은 다음달 한국에 진출한다. 미국 럭셔리 자동차 시장에서 성공한 고급차 인피니티 4개 차종(배기량 3500~4500cc)을 처음으로 판매한다.

닛산의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시가 도시유키(志賀俊之.51) 사장을 지난 8일 도쿄 본사에서 한 시간 동안 인터뷰했다. 그의 해외 언론과 회견은 처음이다. 시가 사장은 르노 그룹 회장을 겸임하고 있는 카를로스 곤 닛산 회장(CEO)의 분신으로 통한다. 닛산의 실질적 경영 책임을 맡고 있다. 그는 곤 회장이 닛산 회생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시가 사장은 "곤 회장은 일할 동기를 부여한다. 정확한 비전과 그에 따른 경영 수치를 분명히 제시한다. 그 전까지 닛산은 우왕좌왕했다. 곤 회장이 와서 일의 우선순위가 정리됐다. 그랬더니 구체적인 경영 성과가 나오고 조직원들은 신이 나서 일을 했다"고 말했다.

곤 회장은 르노의 최고경영자를 겸임하면서 한 달에 일주일 만 일본에 머무르고 있다. 시가 사장은 "곤 회장을 대신해 곤이 제시한 경영 수치와 비전이 제대로 가는지 중간 중간 체크하는 것이 임무"라고 자신의 역할을 정리했다. 그는 손목에 일본.프랑스 시간을 동시에 알려주는 월드타임 시계를 차고 다닌다.

그는 세계 자동차 시장에 대해 매우 특이한 전망을 내놨다. "중국에서 성공한다고 해서 세계 자동차업계의 승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그는 최근 중국 투자를 늘려 2007년까지 50만대를 생산하겠다고 발표했다)"라며 "가격 경쟁력만 믿고 규모만 키우는 회사는 어려워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최근 미국의 '빅3'인 GM.포드.크라이슬러가 나란히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반면 일본 차와 현대.기아차가 잘나가고 있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불과 6년 전만 해도 미국 업체들은 괜찮았고 닛산은 엉망이었지만 지금 닛산은 멋지게 재기했고 현대차도 세계적인 업체가 된 것처럼 자동차 시장은 그만큼 기회도 많지만 위기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시가 사장이 내놓는 한국 자동차 시장 진출 계획도 매우 구체적이다. 그는 "수년 내 한국 수입차 시장의 10% 이상을 차지하겠다"고 말했다. 연간 5000대 이상을 판매한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인피니티를 샀더니 디자인이 멋질 뿐 아니라 서비스도 경쟁업체보다 좋다'는 입소문이 나도록 하는 마케팅을 할 것이라고도 했다. 인피니티는 2003년에 미국 자동차 조사기관인 J D 파워의 고급차 고객 만족도 조사(CSI)에서 1위를 차지했었다. 최근 2년 동안 미국에서 유일하게 30% 안팎의 판매 성장률을 기록 중이다. 그러나 그는 "닛산 브랜드는 한국 국산차의 경쟁력이 강해 진출할 생각이 없다"고 못 박았다. 또 "현대차는 닛산의 강력한 경쟁자의 하나"라며 "현대차는 수년간 놀라울 정도로 품질을 개선했다. 가격 대비 성능이 뛰어나다"고 말했다.

시가 사장은 차세대 승용차 개발 청사진을 비췄다. "90년대 중반 경영 악화로 하이브리드(휘발유 엔진과 전기모터로 구동하는 차) 엔진 기술을 개발하지 못했다. 그래서 도요타의 하이브리드 기술을 도입하기로 했다.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바로 생산할 수 있는 단계다. 하지만 하이브리드 시장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 명확한 판단을 하기 어렵다. 수소차(연료전지차)에 대해 집중 투자를 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도쿄=김태진 기자

◆ 시가 사장은=시가 사장은 최고운영책임자(COO:Chief Operating Officer)로 불린다. 해외 영업과 마케팅.인사.재무, 품질 부문 등을 총괄한다. 올해 52세로 일본 자동차 업체 사장 가운데 가장 젊다. 소위 도쿄대학 출신들이 임원의 절반을 넘던 1990년대 중반만 해도 그는 비주류였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지사장을 지낸 후 97년 귀국해 3년간 기획실을 이끌며 르노의 닛산 인수 협상 때 닛산의 창구 역할을 했다. 르노의 삼성자동차 인수작업에 간여했다. 곤 회장이 그의 경영 수완을 인정하면서 승승장구했다. 2000년 4월에는 아시아.오세아니아.중남미 총괄 수석부사장으로 승진했고 2002년 해외사업부 총괄 부사장을 지냈다. 일본 기자들 사이에선 '말을 잘하고 솔직한 사장'이라는 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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