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질서·무례·몰염치 중국인 인식 고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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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萬人)에 대한 일인(一人)의 투쟁'. 분명 백전백패의 상황이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여인이 있다. 장소는 중국 수도 베이징. 투쟁 대상은 시민들의 무질서와 무례, 몰염치다. 리원(李文.41.사진). 그는 대만의 유명 야당 정치인이자 소설가인 리아오(李敖)의 딸이다.
미국 뉴욕 출생인 그는 대만에서 성장한 뒤 미국 샌프란시스코 대학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에서 직장을 잡기에 충분한 학력이다. 그러나 졸업 직후인 2002년 12월 25일, 그는 베이징행 중국 민항에 몸을 실었다.

리가 베이징을 택한 이유는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영어를 모르고선 국제무대에서 통할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에 대륙의 동포들에게 영어를 심고 싶었다. 그러나 고행은 엉뚱한 데서 시작됐다. 창밖에 함부로 내걸린 속옷 빨래, 길바닥 여기저기에 달라붙은 가래, 채소밭에서 날아드는 모기떼…. 처음에는 호소도 하고 설득도 했다. 그러나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결국 그는 법원으로 달려갔다. 이때부터 기나긴 '고소의 세월'이 시작됐다. 지난해 말까지 1년 남짓 그가 낸 고소장은 118건. 이 가운데 12건만 성공했다.

그의 끈질김을 보여 주는 사례를 보자. 그는 지난해 8월 3년 계약으로 베이징 내 한 빌라에 입주했다. 바로 옆집엔 가수 둥원화(董文華)가 살고 있었다. 문제는 이 집에서 기르는 셰퍼드 세 마리다. 개들은 밤마다 철문을 들이받으며 미친 듯이 짖어댔다. 말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는 둥을 고소했다. 반응이 없었다. 난징(南京)의 금릉만보(金陵晩報)에 이 사실을 투고했다. 네티즌의 비난이 빗발쳤다. 그제야 둥은 마지못해 개를 뒷마당으로 옮겼다. 그러나 개 짖는 소리는 여전했다. 그는 다시 고소했다. 둥은 결국 개를 팔아야 했다.

그가 바로잡고 싶은 중국인들의 추태는 ▶입 냄새▶침 뱉기▶흡연▶큰소리로 말하기▶차선 무시▶차 밖에 쓰레기 버리기 등 하나둘이 아니다. 이 모두를 뜯어고치기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리원 덕분에 중국 문화가 한 단계 나아졌다'는 평가만 받는다면 만족이라는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다.

진세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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