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 침몰 직전 김우중회장 직접 '돈가방 로비' 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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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대우 침몰을 막기 위해 정치권에 전방위 로비를 시도했던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월간중앙> 7월호(6월19일 발매)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이 로비 시도 대상으로 삼았던 이는 당시 집권여당인 새정치국민회의의 제2정책조정위원회 위원장(이하 제2정조위원장)이었다. 제2정조위원장은 당 총재의 지휘를 받아 부실기업 퇴출과 기업 구조조정 작업을 총괄 수행하던 핵심 직책이었다.

대우가 몰락의 길을 걷던 시기 제2정조위원장 자리는 모두 세 사람이 각각 직을 이어받아 수행했다. 그 세 사람은 장영달 열린우리당 중앙상임위원, 박광태 광주시장 그리고 이재명 전 민주당 의원 등이다. 이들은 각각 1998년 3 ̄8월, 1998년 8월 ̄1999년 4월, 1999년 4 ̄7월에 제2정조위원장 자리에 있었다.

당시 여권의 핵심 당직자 중 한사람인 C씨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은 이들에게 각각 거액을 제시하며 '대우를 잘 봐 줄 것'을 부탁했다. 이들 중 장 의원과, 박 시장은 이 로비를 뿌리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재명 전 의원은 제2정조위원장 시절 3억 원을 수수한 사실이 드러나 2002년 대법원으로부터 유죄 판결을 받은 바 있다.

한편 장 의원과 박 시장에게 실제 이러한 로비 시도가 실제로 있었는지 문의한 결과 모두 사실임을 확인해 주었다. 장 의원은 "제2정조위원장 시절 수 차례 만나자는 제안을 거절하다가 물러난 후 수석 부총무로 자리를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김 회장 쪽에서 연락이 와 힐튼호텔에서 만난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4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김우중으로부터 돈 받은 정치인은 정계를 떠나야 한다"는 취지의 글을 올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또 박 시장 역시 비서관을 통해 "당시 그런 일이 있었다. 하지만 돈은 거절했다"고 언급했다. 특히 박 시장은 당시 정권의 최고 핵심 실세였던 A씨의 전화를 받고 약속장소인 힐튼호텔에 도착했는데 그 자리에는 A씨도 동석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A씨는 김 전 회장과 정치권 인사를 중간에서 연결시키는 역할을 자주 한 인물로 지목되고 있다. 이에 대해 박 시장은 "오래된 일이라 A씨가 있었는지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며 즉답을 피했다.

이들이 김 전 회장과 만난 장소는 주로 집무실 겸 정ㆍ관계 로비 장소로 알려져 있는 힐튼호텔 23층. 힐튼호텔 꼭대기인 이곳은 한때 '펜트하우스'로 불렸다. 이곳은 과거 김 전 회장이 재벌 총수나 고위 정치가들과의 은밀한 만남의 장소로 사용했다. 로비의 대상이 됐던 주요 인사들을 이곳으로 불러들여 거액을 전달했다는 사실은 이미 정치권에서 공공연한 비밀로 통한다. 로비 수법은 주로 자동차 키와 차량번호를 물어본 뒤 미리 준비한 '가방'을 차 트렁크에 실어주는 식이었다.

고성표<월간중앙기자(muze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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