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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크탱크란 무엇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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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

중앙일보 독자들은 ‘싱크탱크(think tank)’에 소속된 전문가들의 칼럼을 자주 접한다. 중앙일보는 또 매년 내가 일하고 있는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와 연례 심포지엄을 개최한다. 독자들이나 심포지엄 청중은 가끔 “저 사람들은 누군가?” 하는 의문이 생길 때도 있을 것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의 ‘싱크탱크와 시민사회 프로그램(TTCSP)’은 세계 6000개 싱크탱크를 평가한다. 세계 1위는 워싱턴DC에 있는 브루킹스연구소다. 미국의 주택정책, 국제경제를 포함해 모든 문제를 다루는 연구소다. CSIS는 안보연구 분야에서 세계 1위다. 한국 싱크탱크 중에서 가장 높은 순위는 54위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다.

 싱크탱크들이 밀집한 도시는 워싱턴DC다. 세계 톱 4 싱크탱크 중 3개가 워싱턴DC에 있다. 워싱턴DC에는 독립 싱크탱크가 400개, 미국 정부나 의회와 연결된 싱크탱크는 수십 개가 있다. 이 싱크탱크들이 하는 일은 뭘까.

 모든 싱크탱크는 공공정책 연구를 수행해 단행본·보고서·브리핑·의회 증언·소셜미디어·학술회의를 통해 분석과 제언을 내놓는다. 하지만 싱크탱크마다 고유의 특징도 있다. 3대 싱크탱크인 CSIS, 카네기국제평화재단(CEIP), 브루킹스연구소의 특징은 독립적(정부 지원을 받지 않음), 초당파(공화당도 민주당도 아님), 비이념적(어떤 특정 어젠다를 지지하지 않음)이라는 것이다.

 전형적인 싱크탱크 소장들은 미 국무부나 국방부의 부장관 출신이다. 싱크탱크의 최고위급 전문가들은 둘 중 하나다. 정책 결정 경험이 있는 학자들이 아니면, 학술적인 배경이 탄탄한 전직 정책결정자들이다. 정부가 바뀌면 이들 톱 전문가는 국무부나 백악관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들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이전 정부의 고위 관리들이다. 따라서 독립 싱크탱크들의 성향은 어느 당이 집권당이냐에 따라 약간씩 바뀌는 경향이 있다.

 일부 싱크탱크는 특정 이념과 밀접한 관계다. 정치 이념의 스펙트럼에서 미국기업연구소(AEI)나 헤리티지재단은 오른쪽, 미국진보센터(CAP)는 왼쪽이다. 이들의 연구와 제언은 특정 정당에는 매우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반대편 정당에는 거의 영향력이 없다. 정부 부처와 연계된 싱크탱크도 있다. 랜드연구소(RAND Corporation)는 국방부, 미국평화연구소(USIP)는 국무부와 연계됐다. 이들 또한 독립 연구를 수행할 수 있지만 정부 지원을 받기 때문에 정부 연구 과제가 우선이다.

 독립 싱크탱크들은 독립성 유지를 위해 주로 비(非)정부 자금에 의존한다. 브루킹스연구소와 CSIS의 자금원은 자선기금, 기금보조와 기업 스폰서십이다. 정부와 관련된 기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아주 작다. 미국 외교협회(CFR)의 거물급 회원은 회비를 낸다. 헤리티지재단은 조금씩 후원금을 내는 수많은 ‘풀뿌리’ 보수주의자들을 확보하고 있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은 거액의 기부금으로 설립됐다. 일부 반체제(anti-establishment) 인사는 싱크탱크를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미국 의회는 전혀 반응하지 않는다. 싱크탱크 규제는 시민사회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푸틴이나 시진핑(習近平)은 자국의 싱크탱크를 압박해 시민사회의 비판을 억압한다. 미국인들은 이 같은 상황을 전혀 받아들일 수 없다. 의회와 언론은 정책에 대한 독립적인 분석을 싱크탱크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워싱턴 싱크탱크들의 영향력은 지적인 자유를 바탕으로 정부나 의회를 대신해 까다로운 정책 과제를 다루는 데서 온다. 전문성의 부재, 정파적인 갈등, 관료들의 비타협적인 태도 때문에 회색지대에 놓인 정책 과제가 적지 않다. 싱크탱크는 이런 과제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공적 토론이 가능하게 한다. 의회와 언론은 또 싱크탱크가 제공한 정보를 ‘증폭’하는 역할을 한다.

싱크탱크들이 더 깊숙이 나서게 되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오바마 대통령이 2012년 ‘아시아 재균형(rebalance)’ 정책을 수행하기 위해 태평양 지역에 새로운 군사시설을 건설하려고 했으나 미 의회가 예산 지원을 거부했다. CSIS는 아시아 재균형 전략에 대해 제3자의 객관적인 입장에서 평가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CSIS 보고서를 바탕으로 미 행정부와 의회는 타협점을 찾을 수 있었다.

 싱크탱크는 신나게 일할 수 있는 곳이다. 학술 이론이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현실과 거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점점 더 많은 수의 박사과정 학생들이 학위 취득 후 싱크탱크에 취업하고 있다. 하지만 싱크탱크에서 일하려면 일종의 ‘기업가 정신’이 필요하다.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발굴하고 해결책을 내놔야 한다. 누군가 남이 아이디어를 제공할 때까지 기다리면 뒤처지게 된다. 이 측면에서는 싱크탱크가 재계·정부·대학에서 일하는 것보다 직업 안정성이 낮다고 할 수 있다.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