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스포츠--- 이대로 좋은가<13>빈약한 경기시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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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88년 서울올림픽과 86년 아시안게임의 개최계획서를 보면 서울지역의 수많은 대학 중 경기시설을 제공하는 곳이라곤 인천대(실내체육관)뿐이다.
외국의 경우 대규모 국제대회가 열릴 때 대학캠퍼스 안의 각종스포츠시설이 널리 활용되는 것과 극심한 대조가 된다.
국내대학들은 현재로선 아시안게임 때 실내체육관을 연습장으로 내놓을 정도밖에 안 된다.
대부분의 대학은 축구·야구·농구 등 주요종목의 연습장을 거의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설들은 거의 가장 기본적 요건인 규격만 갖추었을 뿐이다.
각 대학은 스포츠시설을 운동전문학생들의 훈련을 위한 선수전용시설로 여기는 경향이 농후하다. 극소수의 선수들만을 위한 특수시설로써 폐쇄적인 운영을 하므로 여간해서 증축·보수 등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다.
축구의 명문인 연세대의 축구장조차 캠퍼스의 뒤편 외딴곳에 벌겋게 속살을 드러낸 언덕아래 골대만 세워져있다.
대학의 스포츠시설은 원칙적으로 모든 학생과 교직원이 여가에 취미로 운동을 즐기거나 건강을 가꾸는 심신의 후식 및 단련 장이 되어야한다.
그런 가운데 전문적인 선수들이 고도의 과학적 훈련을 할 수 있도록 각종 훈련기재가 최대한 마련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국내 대학의 스포츠시설들은 다수의 레저에 기여하지도 않고 소수의 전문적 선수들을 위한 훈련장으로서도 적합치 못한 것이다.
고려대·연세대 등 극히 일부의 대학에는 체육관 한 구석에서 키트 트레이닝 장을 만들어 놓았으나 기재가 빈약하기 짝이 없다.
복싱부를 두고있는 대학에 규격대로 링을 설치한 복싱 장이 없으며 유도나 레슬링의 선수들은 흔히 농구장 귀퉁이에 매트 몇 장을 깔고 연습을 한다.
이와 같이 빈약한 시설환경 속에 일반학생들의 체육특별활동이란 있을 수가 없다.
대학의 체육은 차단된 성역(?)이 되어 유도를 배우고 싶은 학생은 사설도장을 찾아가야 한다.
가장 두드러진 파행상은 4백m길이의 정규 트랙이 설치 된 육상 장을 보유한 대학이 한곳도 없다는 사실이다.
이미 대학이 스포츠의 기본인 육상경기를 외면한다는 것은 지적되었지만 트랙시설조차 갖추지 않은 것은 대학스포츠의 허상(허상)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실례다.
대학스포츠의 큰 제전인 연·고전에 관해 많은 사람들은 두 대학만의 잔치이므로 양교 캠퍼스 안에서 번갈아 개최하는 것이 대의의 정신을 살리고 양교 우의의 도모에 가장 충실해질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양교 당국도 이 점을 인식하고 있을 것이 틀림없으나 시설투자에 따른 제정 적 부담으로 계속 외면한다는 것이 스포츠계의 빈축이다.
필요한 시설을 외면하는 것과 달리 모든 대학은 선수를 위한 합숙소만은 어김없이 보유하고 있다.
장학혜택을 받는 선수들에게 숙식의 편의까지 제공하는 것 자체를 나쁘다 할 수는 없으나 선수들 사이에 캠퍼스 안의 감옥이라 불리는 대학의 합숙소는 무익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심야훈련이란 것이 필요하지 않는 한 장기간(4년)에 걸쳐 생활의 대부분을 특정공간 속에 붙들어매는 선수관리는 선수들의 의식을 속박하고 권태를 불러일으켜 운동생활자체에 중압감을 가중시키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육상경기장은 물론 조깅코스 조차 없는 대학 캠퍼스에 수십 명의 선수가 기거하는 합숙소가 버티고 있음은 우리나라 대학만이 지니고 있는 난센스다.

<박군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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