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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창덕궁 대국' 옥득진 폭풍 이어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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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 20일 KT배 왕위전 도전기 2국이 벌어질 창덕궁 부용정(사진위). 아래사진은 이창호 9단(오른쪽)과 옥득진 2단의 10일 개막전 대국 모습.

'옥득진 폭풍'이 바둑계를 강타하고 있는 가운데 이창호 9단 대 옥득진 2단의 KT배 왕위전 도전기 2국이 20일 오전 10시 창덕궁 부용정에서 열린다. 조선왕조 때 임금이 거주하던 실질적인 정궁이었던 창덕궁에서 프로 바둑 대국이 열리는 것은 이번 왕위전이 처음이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한국 바둑은 세계를 제패한 자랑거리고, 이창호 9단은 외국에서 더 유명한 기사다. 이런 최고의 기사들이 창덕궁에서 대국함으로써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인 창덕궁도 해외에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바둑 대국을 허용한 배경을 밝혔다.

5000년 역사를 지닌 바둑과 선조들의 체취가 담긴 고궁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이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어진 이번 도전 5번기 2국은 이미경 국회 문광위원장과 이해찬 국무총리가 대국 개시 선언(오전 10시)과 재개 선언(오후 2시)을 나누어 맡아 줄 예정이다.

?이창호 vs 옥득진=10일의 개막전에서 예상을 뒤엎고 옥득진 2단이 백으로 불계승을 거뒀다. 체급이 다르다는 한마디로 이창호 9단의 압승을 점치던 프로기사들도 1국이 끝난 뒤엔 태도가 조금 달라졌다.

대국에서 보여준 이창호의 행마를 놓고 유창혁 9단은 "이해할 수 없는 수가 몇 번 등장했다. 이창호 9단이 제 컨디션이 아닌 듯 보인다"고 말하고 있다. 1국에서 이창호 9단의 대마가 잡혔는데, 그 과정이 예상 외로 무기력했다는 의미였다.

이창호 9단이 슬럼프 기미를 보인다는 의견도 나온다. 연초 농심배 5연승으로 페이스를 완전 회복한 듯 보였던 이 9단은 최근 중요 대국에서 세 번 연패했다. 첫 번째가 LG배에서 중국의 15세 신예 천야오예(陳耀燁) 3단에게 패배한 것. 두 번째는 바로 왕위전 1국의 패배이고, 14일 TV아시아 선수권에서 일본의 장쉬(張) 9단에게 진 것이 세 번째다.

반면 옥득진 2단은 왕위전에서 9연승을 거두는 동안 기세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 '옥왕'이란 별명도 얻으며 승승장구하는 옥득진의 눈 앞에 꿈같은 타이틀 획득이 희미하게 어른거리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사는 여전히 "바둑이란 어느 날 꿈을 깨듯 단숨에 강해지는 것이 아니다"라며 이창호의 깊은 저력을 의심치 않는다. 옥 2단이 지금까지는 져도 본전이란 편한 심정이었지만, 이제는 어깨에 힘이 들어갈 수 있다는 점도 마이너스 요소로 지적되고 있다.

◆ 창덕궁 부용정의 대국=경복궁이 임진왜란 때 불타는 바람에 조선 개국과 더불어 창건된 창덕궁은 200여 년간 임금이 가장 많이 기거한 조선의 실질적인 정궁이었다. 보존 상태가 뛰어나 1997년에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대국이 열리는 부용정은 임금이 쉬던 정자다. 창덕궁의 여러 비원 중에서도 경치가 가장 아름다운 정원에 자리 잡고 있다. 검토실로 정해진 영화당은 임금이 활을 쏘거나 친히 과거시험을 관장하던 곳이고 위성채널인 SKY바둑의 TV중계가 이뤄질 주함루는 왕실의 책을 보관하던 곳이다.

조선 왕조 때 임금 중에선 세조.세종이 특히 바둑을 좋아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세조는 신숙주.한명회 등을 불러 바둑을 두거나 종친들과 함께 주연을 베풀며 신하들에게 바둑을 두도록 하고 이긴 사람에게 상품을 하사했다는 기록이 실록에 나온다.

20일 창덕궁에선 도전기와 더불어 명사들과 프로기사들의 기념 대국도 함께 벌어질 예정이다. 그러나 공개 해설회와 팬들을 상대로 한 지도다면기는 뒤로 미뤄졌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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