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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가 밑 비둘기들 피아노줄로 퇴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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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서울역 고가 밑에 모여 있는 비둘기들(왼쪽). 피아노선 설치 후 그 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사진 서울시]

홍제천을 따라 자전거를 즐겨 타는 김화정(38·여)씨는 서울 마포구 성산1교 아래를 지날 때면 숨을 참고 페달을 더 빠르게 밟곤 했다. 다리 아래 철제 구조물 가장자리에 옹기종기 모여앉은 비둘기가 싼 똥을 정수리에 정통으로 맞았던 기억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안심하고 지나간다. 철제 구조물에 ‘피아노선’을 설치하고 부터 신기하게 비둘기들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서울시 서부도로사업소 이종욱(43) 주무관이 낸 아이디어다.

 지난 1월 비둘기로 인한 불편을 호소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이어지자 이 주무관은 고민에 빠졌다. 한 겨울이라서 기존에 사용하던 비둘기 접근방지망, 조류기피제 등을 즉각 설치하기가 어려웠다. 그 때 눈에 들어온 게 ‘스턴트맨’이 몸을 지탱할 때 쓰는 피아노줄이었다. 이 주무관은 “피아노줄이 1㎜ 이하로 가늘어 비둘기가 앉기 어려울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며 “양쪽에 지지대를 박고 바닥에서 5㎝ 높이에 피아노선을 설치하자 비둘기들이 자연스럽게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고 설명했다. 비둘기들이 줄을 움켜쥘 수도 없고 철제 구조물 가장자리에 앉을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비둘기는 시의 골칫거리 중 하나다. 위생상으로 문제가 적지 않은데다 산성 성분인 비둘기 배설물이 다리 등의 시설물을 부식시켜서다. 조류 기피제, 초음파 방지기 등을 동원하지만 m당 설치비용이 최소 5만원 이상으로 비싸고 보기에도 좋지 않다. 하지만 피아노선은 가느다래 미관을 해치지 않는다. 비용면에서도 50% 가량 저렴하다. 설치도 쉽다. 이 아이디어는 ‘2014 서울 창의상’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시는 지난 9월 한남 2교, 반포대교 북단 등에 피아노선을 설치한데 이어 앞으로도 설치 장소를 확대할 방침이다.

구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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