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영·독·불의 심해 독점개발 협약의 충격|해저자원 개발에 우리도 장기대책 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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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최근의 외신보도에 의하면 미국·영국·서독·프랑스 등 4개국이 태평양에 있는 심해저 광물자원을 독점개발하기 위한 비밀협정을 체결하였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진다. 지난 10여년 동안 온 세계가 갖은 파란곡절을 겪으며 겨우 마무리 지은 해양법 협약의 최종체결을 불과 몇 개월 앞두고 심히 불길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이 문제는 바다건너 일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장래 생계문제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문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국제 심해저 문제, 독점개발을 위한 비밀협정의 의미, 앞으로의 전망, 우리의 대책에 관하여 간단한 설명과 의견을 제시해 보겠다.
국제심해저란 모든 나라의 관할권밖에 있는 해저를 말한다. 간단히 말해서 공해의 밑바닥을 의미한다. 이 국제 심해저에는 엄청난 양의 니켈·코발트·망간이 깔려있는 반면 현재 이를 완전히 개발할 능력이 있는 나라는 미국뿐이며 그 외에 프랑스·서독 등 몇 나라가 상당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실정이다.
1967년 제22차 유엔총회에서 국제 심해저를 인류의 공동수역으로 설정하고 인류전체를 위하여 공동개발하자는 제의가 나왔다. 이 제의는 즉시 제3세계의 강력한 지지를 받아 국제 심해저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위원회를 설치하고 69년에는 유엔총회 결의 2천5백74호를 채택, 국제 심해저 체제가 확립되기까지는 자원의 탐사 및 개발을 금지하기로 했다.
미국은 이러한 국제추세에 당황하였으나 세계여론에 밀려 국제 심해저 개념을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1970년 유엔총회는 결의 2천7백호를 채택, 국제 심해저를 규율하는 원칙선언을 했다. 그 내용은 국제 심해저의 독점을 금지하고 공동경영제도를 수립한다는 것이다. 이 문제와 다른 해양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73년부터 제3차 유엔 해양법 회의를 개최했다. 이 회의는 각국의 이기적 주장이 엇갈려 심한 논란을 겪으며 10년 가까이 걸쳐 마침내 해결이 되는 듯 했다. 그런데 81년 3월 미국은 갑자기 행정부가 바뀌었다는 핑계로 종래의 입장을 완전히 재검토한다고 선언했다.
미국이 태도를 표변한 핵심문제가 바로 이 국제 심해저 문제다. 특히 이 개발을 담당할 국제 심해저 관리청의 36개 이사국 중 선진국은 12개 정도밖에 차지하지 못하여 결국 『개발 도상국들의 주도하에 미국의 기술과 자본으로 개발하여 모두 나누어 갖는다』는 방안이 수립된 셈이므로 미국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국의 폭탄선언이 있자 회의장은 완전히 미국의 성토 장으로 변했다. 미국은 이러한 국제비난을 감당할 수 없자 81년8월 그 태도를 완화, 국제 심해저 문제를 다시 협의한다는 양해하에 일단 마무리 된 「해양법 협약안」을 공식적으로 채택하는데 동의했다. 이에 따라 해양법 협약은 82년 중에 확정될 예정이었다.
미국이 굴복은 하였으나 이기심을 버린 것은 아니었다. 미국은 혼자서는 도저히 안되겠다는 것을 확신하자 이번에는 프랑스·서독·영국을 끌어넣어 비밀협정을 체결, 해양법 협약이 확정되기 전에 개발에 착수하여 기정사실로 하려는 속셈인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지난 1월19일의 4개국 비밀협정의 의미다.
이 국제 심해저 제도의 기본원칙은 지난 10여년간 수 없는 결의·선언 등을 통하여 이미 관습법으로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미국도 이 모든 것에 스스로동의 한바 있다.
더구나 공식 「협약안」이 채택되고 정식 조약체결을 바로 앞둔 지금 미국이 이러한 배신행위를 한다는 것은 법을 따지기 전에 문명국으로서 용납할 수 없는 자세라 생각한다.
이 문제가 특히 충격적인 것은 이것이 국제 심해저 문제로 끝나지 않고 비슷한 법적 체제하에 있는 자주에도 뻗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인류의 생계문제는 이제 육지를 가지고는 부족하여 해저에까지 진출하고 있으며, 계속 우주로 발전하여 나갈 것이다. 현재까지는 우주가 인류의 공동유산이라고 하여 국제 심해저와 비슷한 법적 체제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이기심이 계속 작용한다면 언제 또 다시 배신을 하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물론 3월부터 열릴 3차 해양법 회의 제11회기에서 미국과 다른 나라들은 심한 충돌을 벌일 것이다. 이번에는 미국 혼자가 아니라 영·불·독의 지원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그 전망은 지극히 불투명하다.
제3세계는 미국의 태도가 어떻든 금년 9월 카라카스에서 해양법 협약을 체결할 전망이 짙다. 그러나 미국의 태도에 따라서는 해양법이 심한 혼란을 겪을 우려마저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우리의 대책으로는 묘안이 없다. 우선 단기적으로는 일본·캐나다·이탈리아 및 개발도상국들과 긴밀한 협조를 하는 길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 분야에 깊은 연구를 기초로 하는 장기대책이다. 특히 금년 8월에는 우주법 회의가 열릴 계획임을 주의해야한다. 국제해양법·국제우주법·국제경제법 분야가 정신없이 발전 해가고 그에 따라 우리의 중요한 이해문제가 거론되고 있는데 우리 나라의 국제법 현실은 심히 한심스럽다.
사법시험의 2차 과목에서 국제법이 제외되는 바람에 법과대학에서 완전히 소외되어 국제법 교수가 정식으로 있는 법대조차 손으로 꼽을 정도다. 이런 실정을 하루 바삐 시정하여 우리의 생계문제와 직결된 이 분야의 연구개발이 촉진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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