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역 이 사람!] 대전 중앙과학관 정동찬 실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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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동찬 과학기술사 연구실장이 전시실에서 전통 생활 도구에 담긴 과학원리를 학생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김방현 기자

"조상들의 생활 도구에는 과학의 원리가 숨 쉬고 있습니다."

15일 오전 대전시 유성구 구성동 국립중앙과학관 과학기술사 전시실. 정동찬(49) 연구실장이 중학생 20여 명에게 조상들이 쓰던 수레.범종 등 생활 도구의 제작 과정과 작동 원리를 설명했다.

"고구려가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은 수레 제작 방법 같은 과학기술이 발달했기 때문입니다. 수레바퀴는 오늘날 자동차 산업의 뿌리죠."

정 실장의 설명을 들은 이재원(중학교 2년)양은 "조상들의 삶 속에 다양한 과학기술이 숨어 있는 줄은 처음 알았다"며 신기해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고고학을 전공한 정 실장은 1989년 국립중앙과학관 연구사가 된 뒤 지금까지 맷돌.물레방아.한지.옹기.쟁기 등 우리 생활 도구에 담긴 '과학 슬기'를 발굴해 왔다. 그는 전통 문화유산 속에 담긴 과학 슬기를 '겨레 과학'이라 부른다. 그가 이 분야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서양 중심의 과학 연구 풍토가 못마땅했기 때문이다.

"과학기술도 과거를 제대로 알아야 정체성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하는 그는 전통 생활 도구와 관련이 있는 국내외 각종 서적을 탐독, 과학 슬기를 찾았다. 그의 연구실에는 전통 생활 관련 책이 1000여 권이나 있다.

또 근무가 없는 주말과 휴일에는 전국을 돌며 가마솥과 같은 생활 도구를 수집해 실험을 통해 과학의 원리를 분석했다. 전통의 맥을 잇고 있는 전국의 '장인(匠人)' 100여 명을 만나 제조 과정을 조사하기도 했다.

"'조선 낫'이 닳기는 해도 부러지지 않는 이유는 여덟 번 이상 열처리 과정을 거쳐 날 부분은 강하게, 등 부분은 무르게 만들어 등 부분이 충격을 흡수하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신소재로 각광 받는 세라믹의 원조는 옹기이며 자동차의 동력을 전달하는 캠(CAM)은 물레방아의 원리와 같습니다."

그의 연구 성과는 30여 권의 책으로 정리돼 출간됐다. 낫.옹기 등 그가 밝혀낸 겨레 과학 성과는 97년부터 초등학교 5학년 사회교과서에 실렸다. 그는 99년에 과학기술부 소속 공무원으론 처음으로 '신지식인'으로 선정됐다. 노동부는 그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95년부터 '민족고유기능 전승사업'을 시작했다.

대전=김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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