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기 : 타블로씨는 셰익스피어의 어떤 작품을 즐겁게 봤나요?
타블로:저는 연극과 영화 속의 셰익스피어에 관심이 많았어요. 셰익스피어나 신화 등 고전을 모르고는 현대 문화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더라고요. 예컨대 할리우드 영화 '타이타닉'에서도 '로미오와 줄리엣'을 발견할 수 있잖아요.
이: 저는 '타이타닉'이란 제목만 보고도 비극이란 걸 알아차렸어요. '타이타닉'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거인족 '타이탄'을 연상시키잖아요. 타이탄은 너무 교만하게 굴다가 전쟁에서 올림포스의 신에게 박살이 나거든요. 이렇게 문화의 큰 문맥을 알면 같은 작품을 놓고도 훨씬 재미있게 즐길 수 있어요.
타:저도 가사에 신화나 성경의 비유를 많이 썼거든요. 아버지가 갖는 부담을 그리스 신화의 '아틀라스'에 빗대는 식으로요.
이:절묘한 비유네요. 하늘을 짊어지고 있는 거인신 아틀라스는 힘은 세지만 미련하거든.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왜 이리 미련했던 가란 원망까지 담겼네요. 제가 민요가 끈질기게 살아남은 이유를 나름대로 분석해봤어요. 그게 전부 성적 상징으로 이뤄져 있더라고요. '천안 삼거리'를 볼까요. 삼거리의 모양이 누워 있는 사람의 몸을 연상시켜요. 그 가운데 있는 '능수야 버들'도 털이 부숭한 느낌을 주는 성적 상징이죠. '백도라지'도 씻어 놓으면 여자의 몸이랑 닮았잖아요. 저는 노래를 무척 좋아하는데, 요새 노래 가사는 상징적인 비유가 좀 부족해요. 그냥 '너를 사랑해'라고 말하면 싱겁지 않나요.
타:맞아요. 원래 잘 만든 랩은 시적인 요소를 담고 있어요. 음악적인 매력 외에 가사 속의 상징을 알아맞히는 쾌감이 크거든요.
이:힙합이란 것 자체가 보수적 가치체계에 대한 부정이죠. 그럼에도 인간의 가슴을 치는 방법은 문학의 유구한 전통을 따르고 있네요. 셰익스피어도 그리스.로마 신화의 전통을 충실히 따랐어요. 고전과 신화를 절묘하게 응용해 '박물관에서 태어난 작가'란 평도 들었죠.
타:그런데 대중은 셰익스피어를 잘 모르더군요.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악덕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을 가사에 넣었어요. 그랬더니 팬들이 '샤일록이 뭔가'를 두고 논쟁하더군요. 더 깊은 감동을 주려고 선택한 문학적 표현인데 어려워하며 거부반응을 보이더라고요.
이:문학평론가 김화영씨가 소설가 이문열씨에게 그랬대요. "당신 작품을 가지고 낸 문제, 당신도 절대 못 풀 걸…." 작품 자체를 즐기는 게 아니라 밑줄 그으며 분석하는 게 우리의 문학 교육이니까…. 저도 셰익스피어를 분석하느냐 즐기느냐를 두고 고민했었죠. 결국 작품 자체를 즐기려고 이 길로 들어섰죠.
타:저는 뉴욕에서 '햄릿'을 힙합으로 표현한 극을 즐겨 봤어요. 살아 있는 셰익스피어를 즐기고 싶어서요. 셰익스피어를 현대화하는 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항상 그 시대에 맞게 재해석해야죠.
타:셰익스피어가 글을 잘 쓸 뿐 아니라 말장난이나 재치로 유명하잖아요. 제가 랩을 좋아하는 이유도 그거예요. 래퍼들이 대결하는 '랩 배틀'은 사실 누가 더 말장난을 잘 하느냐는 내기인데, 가만 보면 옛 시인들의 재치 대결하고도 닮았어요. 힙합 시대에 태어났다면 셰익스피어도 랩을 굉장히 잘했을 거예요.
이:결국 노래 가사도, 문학도 말장난이거든. 고급 말로는 '레토릭(rhetoric)'이라고 하죠. 타블로씨가 셰익스피어를 힙합으로 퍼뜨려보세요.
타:선생님도 30년쯤 늦게 태어나셨다면 저랑 같이 힙합을 하지 않았을까요?
글=이경희 기자, 사진=권혁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