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수집 차 귀국한 재독 작곡가 박영희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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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편안해 보이는 바지에 스웨터, 그 위에 반코트를 걸친 겉모습에는 별로 신경을 안 쓰는 듯한 소탈한 차림새로 그는 나타났다. 한 손에는 큼직한 헝겊가방을, 다른 팔로는 헝겊 케이스에 든 가야금을 안고 있다.
작곡가 박영희씨(37). 독일 프라이부르크에 머무르며 유럽지역에서 활발한 작곡활동을 펴고 있는 그가 자료수집 차 잠시 귀국했다.
그동안 전라도지방을 여행했는데 판소리와 잡가를 녹음테이프에 담았고 목포에서는 지신밟기 팀을 두팀이나 만났다고 한다.
『저는 한국인이 갖고 있는 서정인 한을 뛰어넘어 흥이 나고 신명나는 음악을 만들고 싶습니다. 지금은 자꾸 잊혀져 가는 것들, 그러고 잊어버린 우리의 소리를 제 음악에 담았으면 합니다. 특히 농악이 갖는 의미는 중요합니다. 그 속에 내재된 지칠 줄 모르는 흥을 음악 속에 담고 싶어요.』
박씨는 서울대음대 작곡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74년 독일정부 장학금으로 프라이부르크 대학에 유학을 떠났다. 작곡·이론·피아노를 전공한 그는 『열심히 외국음악을 공부하다보니 자신이 어디 있고, 무엇을 얘기할 수 있을 까를 깨닫게 되더라』고 말한다.
한국말, 특히 방언이 갖는 억양과 여음에 집착하면서 속으로 익히고 있는데 아직 작품이 될 수 있을지, 어떤 작품이 될는지는 모르겠다고 한다. 6일 독일로 돌아가면 당장 위촉받은 몇 개의 기악곡을 써야한다고.
박씨는 78년 『만남』으로 스위스 보스빌 작곡 콩쿠르에서, 80년에는 한국의 향도가와 농악을 원전으로 작곡한 『소리』로 슈투트가르트 작곡콩쿠르에서 각기 1등.
『소리』는 유럽에서 가장 권위 있는 도나우에싱겐 현대음악제 위촉 곡으로 대단한 호평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81년11월에는 프랑스 메츠 현대음악제에서 『마디』를 발표했다. 국내에서는 81년 난파 음악상을 받았다. 미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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