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다 웃다 80年] 28. 술주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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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 필자가 출연한 영화 '아리송해'(1979년작)의 한 장면.

1950년 10월 중순이었다. 국군은 압록강에서 중공군과 대치하고 있었다. 나는 평양을 지나 평안도 개천까지 올라갔다. 이 무렵 사단 연락병을 통해 '구봉서'란 이름을 처음 들었다. 사단 군예대에 구봉서란 희극배우가 있는데 참 웃긴다는 것이었다. 10월 18일 중공군이 압록강을 건넜고 부대에는 후퇴 명령이 떨어졌다. 그리고 평택까지 내려왔던 전선은 다시 북상하고 있었다.

군예대는 경북 안동에 머물고 있었다. 석 달 전에 보충을 요구한 여자 대원 세 명이 부대로 왔다. 나는 그들을 사무실로 불렀다. 사단 정훈참모부에 제출할 신상명세서를 작성해야 했다. 다들 2~3년 악극단 경력이 있었다. 그 중 서지숙(당시 21세)이란 여자가 눈에 띄었다. "고전무용과 현대무용, 둘 다 자신있어요." 그는 무용수였다. 늘씬한 몸매에 조막만한 얼굴이 예뻤다. "고향은 서울이에요." 여학교를 다니다 집안 형편 때문에 무용수가 됐다고 했다.

그는 솔직하고 적극적인 여자였다. 내가 옷을 벗어 놓으면 감쪽같이 가져다 다림질까지 해놓았다. 꾀죄죄하던 내 옷차림이 확 달라졌다. 표백제 먹인 광목처럼 땟국이 쭉 빠졌다. 공연장에서 서지숙의 인기는 최고였다. 전쟁에 지친 병사들은 그의 늘씬하고 고운 몸놀림에 환호성을 질렀다.

그는 사단 장교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았다. 그래서 장교들 파티에 종종 초청을 받았다. 그때마다 지숙은 혼자선 초대에 응할 수 없다고 버텼다. 그래서 내가 덤으로 따라가곤 했다. 일종의 보디가드인 셈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우린 조금씩 정이 들기 시작했다.

대구의 미 군사고문단 장교클럽에서 군예대원들을 모두 초청한 적이 있었다. 우리는 "이야, 고기를 실컷 먹을 수 있겠다"며 트럭을 타고 대구로 갔다. 진수성찬이었다. 그런데 음식이 넘어가지 않았다. 한 미군 중령이 지숙에게 계속 접근했다. 몇 번씩 춤도 추고, 맛난 음식도 챙겨서 안겨줬다.

나는 술을 입에 대지 않는다. 유랑극단 시절 술 때문에 폐인이 되는 선배들을 보고서 술을 안 먹기로 결심했다.

이후에도 나는 이 약속을 지켰다. 그런데 이날 밤만은 달랐다. 벌컥벌컥 술을 들이킨 나는 결국 만취하고 말았다.

트럭을 타고 부대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나는 주정을 부렸다.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주정이었다. "이봐요, 미스 서. 그 미군 장교랑 잘 어울리던데. 기막힌 한 쌍이더군." 나는 계속 이죽거렸다. 다른 단원들이 조용해졌다. "그 미군 장교랑 다시 만나기로 했어? 그래?" 나는 그가 받아칠 줄 알았다. '춤을 추든 말든 무슨 상관이에요?'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지숙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다음부턴 조심할게요." 고개를 숙이고 다소곳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오히려 내 가슴이 뜨끔했다. 괜히 미안했다. 그래도 겉으론 아닌 척했다. "조심하긴 뭘 조심한다 말이야!" 몇 번 악을 썼다. 그리고 슬그머니 자는 척 코를 골았다. 묘하게도 기분은 좋았다.

배삼룡 코미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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