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해병과 함께 도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박소장이 사령부에 도착한지 얼마안돼 헌병차감 이광선 대령이 70여명의 수사요원을 대동하고 들이닥쳤다. 그러나 이대령이 동조자로 바뀌어 위기를 넘긴다.
이광선씨의 회고.
『15일 밤 가족들과 극장구경을 갔다가 10시 반쯤 돌아왔는데 비상이 걸렸다는 겁니다. 11시쯤 부대에 도착했죠.
헌병감 조흥만 준장이 <군에서 쿠데타를 일으킨다는데 상황을 도무지 알 수 없다>는 거예요.
11시30분쯤 조준장이 <×관구사령부에 주모자들이 몰려있으니 가서 몽땅 잡아넣으시오>하고 명령합디다.
상황을 모른 채 CID요원 70명을 데리고 ×관구사령부로 달렸죠. 당시 헌병감실 직속으로 1개 헌병대대와 △CID가 배속돼 있었거든요.
수사요원들을 복도에 대기시키고 참모장실로 김재춘 대령을 찾았지요. 김대령은 자초지종을 털어놓으며 협조를 간청합디다. 지도자가 누구냐니까 엄지손가락을 내보이며<옆방에 있으니 만나보라>고 합디다. 나는 박소장임을 이내 알아 차렸죠. 당시 내 처남 김모 대위(전 워싱턴 총영사)가 박소장의 직속부관이어서 박소장의 주변관계를 알고 있었지요. 박소장도 정세설명을 하곤<이대령도 동지가 돼 주시오>라고 해 응낙했습니다.
밖으로 나와 CID수사 요원들을 한방으로 몰아넣고<내 명령 없이 일체 움직이지 말라. 전화도 해선 안된다>고 엄명을 내렸습니다. 다시 사령관실로 왔더니 박소장이<이놈들이 죽었나 살았나 연락이 없지…>하고 걱정을 하는 거예요. 장총장에게 편지를 가져간 송준장 일행을 말하는 거지요. 그러면서 내게<장총장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아느냐>고 묻더군요. ×××방첩대에 있다고 알려줬죠.
박소장은 바로 전화를 걸었습니다.(대화내용은 연재13회)
박소장은 전화를 놓더니<공수단이 감감무소식이다>라면서 한장군과 함께 공수단으로 갔습니다.
잠시 후에 송찬호 준장 윤태일 준장이 들어옵디다. 헌병차감인 나를 보더니 흠칫 놀라면서 권총을 빼 들더군요.
김재춘 대령이 <헌병차감도 협력하기로 했다>고 설명하자 자리에 앉더군요.
얼마 후 조흥만 준장, 서종철 소장이 헌병1개 중대를 끌고 들이 닥쳤습니다. 서사령관은 혁명주체인 김재춘 대령에게 부대지휘를 맡기고 그때까지 헌병감실에 앉아있었어요. 조준장은 나를 보자 지휘봉을 흔들며<당신 어떻게 된거야>하고 핏대를 올리더군요.
나는 두 장군을 끌고 복도로 나왔습니다.<이미 때가 늦었습니다. 공수단·해병대는 출동중입니다. 나는 박장군에게 협조하기로 했소. 체포를 하든 말든 알아서 하쇼>했죠. 조준장의 태도는 강경하더군요.
서소장은 자리를 떠버리고….』
헌병감 조흥만 준장의 증언은 다르다. 우선 차이점만 간추리면-.
『장총장은 사령부에 모여있는 장성들은 설득해 귀가시키고 영관급 장교는 조사하라고 했어요. 이것이 어려우면 밤 동안 외부와 차단해 움직이지 않게 조처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지시가 막연해 우선 이헌병차감을 보냈습니다. 0시가지나 장총장의 지시로 현장에 갔죠. 이헌병차감의 상황보고를 듣고 혁명동조자로 변했음을 알았습니다.
장총장에게 전화로 보고했더니<김재춘 대령과 상의하라>는 거예요. 김대령을 불러냈는데 그도 역시<해병대와 공수단이 출동했다는데…기다려봅시다>라는 어정쩡한 대답이예요. 서사령관도<장총장의 딱 부러진 특명이 없으니…>정말 답답한 상황이었지요.』
이래서 ×관구사령부는 긴장 속의 대치상태가 계속되었다. 양쪽 모두 상황이 불투명해 단안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사령부의 혼란은 그 예하사단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은 2시를 지나고 있었다.『나올 수 있는 부대라도 출동시켜 놓아야 담판이라도 짓지 않겠나』면서 박소장은 2대의 경호차와 함께 공수단으로 출발했다.
길재호 유승원 강상욱 중령 등 7명도 그나마 한 가닥 기대가 걸린 △사단으로 떠났다.
박소장은 이곳에서 공수단 출동을 확인하고 출동하는 해병대와 만나 한강을 함께 넘었다.
육본은 예정대로 출동한 포병단이 이미 장악하고 있었다.(연재12 참조)
이때부터 박소장은 자신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새로운 사태는 상황을 바꿔놓고 있었다.
×관구사령부 상황실의 무전기가 한강교전을 알린 직후 장총장의 지시가 끊어졌다. 조흥만 헌병감이 주춤 물러섰고 서종철 사령관은 부대장악을 포기했다.
△사단의 안동정 사단장도 차츰 고립되기 시작했다. 이리하여 발이 묶였던 주력부대중 2개 부대는 때늦기는 했지만 저항없이 서울로 들어갔다. 그 과정을 증언으로 살펴보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