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6화 ??맥인맥|교수 인민재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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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한지 며칠 후 장발학장의 관차를 운전하던 이성규가 찾아와서『내일은 잠깐 피하는 게 좋겠다』고 귀띔했다.
그는 우리 집(혜화동 195·서울대관사)옆에 세 들어 살고 있어서 내가 더러 관차를 얻어 타기도 했지만 집이 가까와 이웃사촌처럼 지내던 터였다.
이기사는 학교에 불려나가 한상원이란 학생이 벚나무 몽둥이를 들고 설치는 바람에 그가 시키는 대로 학장차를 몰고 다녔다고 전제, 그 날 학생회의에서 교수집 습격을 결의했다고 알려줬다.
이기사의 정보대로 그 이튿날 명륜동 1가의 장발 학장집과 관수동의 윤승욱 학생과장집에 학생들이 찾아가 소란을 떨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장발씨는 울타리 안에 사닥다리를 놓고 담을 넘어 비원으로 피해 화를 모면했고, 윤승욱씨도 고향(수원)에 내려가 별일이 없었다.
장발씨는 그 후 오히려 북쭉인 장단 쪽으로 피난 갔다가 다시 내려와 광주의 잘 아는 가톨릭신자 집에 피신해 있었다.
윤승욱씨는 그 날은 무사했는데 얼마 후에 옷을 갈아입으러 집에 잠깐 들렀다가 잠복해 있던 좌익학생에게 붙잡혀 간 후론 행방이 묘연해졌다.
이런 일이 있은 며칠 후 동양화과에 다니던 김천배란 학생이 내게 찾아와 학생들이 미술대학 교수들을 인민재판에 붙였다고 알려줬다.
그는 X라는 학생이 학교 태극기를 꺼내 여러 사람 앞에서 짓밟고 찢었다고 험악한 분위기도 설명했다.
동양화과 교실에서 궐석으로 열린 인민재판은 칠판에 교수이름을 써 놓고 하나씩 처리했다는 것이다.
맨 처음 장발학장의 이름을 쓰고 소위 재판장이란 자가 학생들에게『처단해야 하느냐』고 묻고는『옳소』하는 찬동을 받아 처단을 결정했다고 김천배군은 현장을 보듯 소상히 설명했다.
윤승욱씨도 학생과장 당시 국대안 반대학생을 처결하는 과정에서 좌익학생들에게 미움을 산 탓인지 처결로 결정되었다고 전했다.
김군은 내 이름을 칠판에 썼을 때는 아무도 가타부타는 말이 없었는데 한 여학생이 처단을 주장했다고 일러줬다.
그러자 김동철이란 학생이 나서서『그 사람이 뭐 처단 대상이 되느냐. 학교에서 잘못한 일이 뭐 있느냐』고 항변, 위기를 모면했다고 김군은 인민재판 과정을 이야기했다.
인민재판이 있은 며칠 후 대학교에서 통지가 왔다. 구직원은 일단 출근해서 교양을 받으라고 했다.
겁이 났지만 무슨 일인가 궁금해서 나가봤다. 그랬더니 석고상이 몇 개, 이젤이 몇 개 하는 식으로 비품이름과 수량을 써내라고 했다. 그러고는 교수들을 모두 강의실에 입실시키고 교양을 시켰다.
교양 강사는 6·25직전까지 미술대학 교무과장으로 있던 근원 김용준씨였다. 누구에게 이런 지시를 받았는지 그는 순 한글로 발행한 인민일보를 말아 쥐고 강의실에 들어와 인민군이 부산으로 밀고 내려간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근원의 변신이 이상했지만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어서 그저 그의 동정만 살폈다. 그도 어색한 듯 무슨 말을 할듯할듯하다가 그냥 넘겨버리는 눈치였다.
교양을 시키고는 구직원은 파면령이 내렸다고 일단 돌아가라고 했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말 한마디로 파면통보를 받고 기운 없이 집에 돌아와 앉아있는데 현초(이유태)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무슨 좋은 소식인가 싶어 반겨 맞았더니 현초는 말보다 먼저 편지부터 내밀었다. 좌경한 동양화가 이팔찬이 보낸 편지였다.
이팔찬은 현초와 함께 제국미술학교에 다녔을 뿐 아니라 이당(김은호)문하에서도 잠깐 그림공부를 해 나와도 잘 아는 터였다. 빨간 잉크로 쓴 잔글씨여서 어른어른했지만『내일 하오2시에 본정통(충무로) 종방(가네보)에서 미술가 열성자 대회가 있으니 후일을 생각, 월전과 같이 꼭 참석토록 하라』는 내용이었다.
현초와 함께 열성자 대회에 가보니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비집고 들어가 뒷벽에 기대고 서 있었다. 사회는 감옥에서 갓 나온 듯 머리를 박박 깎은 서양화가 기웅이 맡아서 했다.
그는『김일성 동무가 남한사람을 다 용서해도 미술가 가운데 고??동과 장발 두 사람만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고 입에 거품을 물고 열변을 토했다.
현초와 나는 열성자 대회를 마치고 나오다가 우연히 근원을 만나 동행했다.
다른 때 같으면 무슨 말이 있으련만 근원은 그날따라 말을 붙여도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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