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거울|친정 어머니의 하소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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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며칠 전 딸집에 오신 친정엄마는 딸을 보자 애써 눈물을 감추려 애를 쓰셨다.
거칠은 손, 마디마디 막대기 같은 손가락을 쳐다보니 가슴을 에는 아픔이 온다.
속이 상해 딸네 집에 하소연하러 오셨겠지만 딱하시기도 하고 화도 치민다. 젊어서는 불같다는 성격의 엄마는 나이 탓도 있겠지만 풀죽어 쓸쓸하게만 보인다.
은근히 오빠내외가 원망스럽지만 나도 같은 며느리입장으로 어찌 올케언니를 탓할 수만 있겠는가.
『섭섭한 마음은 엄마한테 달렸어요.』친정엄마를 이해시키며 곰곰 생각하니 수년 전 시어머님을 모시고 살 적이 생각난다.
세째 며느리인 나는 한때 시어머님을 모신 적이 있었다.
어른을 모시는 입장인 나에게도 어려운 일이었지만 시어머님 역시 몹시 불편해 하셨던 것 같다.
속상한 일이 있어서 찡그려도, 아이들을 야단쳐도, 남편과의 말다툼에도 시어머님은 당신 때문인 양 불안해하셨다.
과자나 과일이라도 드리면『애들이나 줘라』하시며 사양하시는 말씀을 곧이곧대로 믿고 그릇을 들고 나왔고, 끓인 밥을 싫어하시는 줄도 모르고 점심때는 가끔 찬밥을 끊여드렸는데 후에 들으니 무척이나 섭섭하셨다고 한다.
며느리인 나도 시어머님의 눈치를 보며 아이들을 나무라고, 남편과의 말다툼은 시어머님의 귀에 들릴까 두려워 이불 속에서 하기도 했다.
결국 시어머님은 따로 방을 얻어 나가셨는데 이삿짐을 꾸려 드리며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이사가신 뒤 난 혼자 많이도 울었었다.
사람의 마음을 그림 보이듯 상대편에 펼쳐 보일 수는 없는 것일까 생각하며‥‥.
그런데 친정엄마는 내가 마다하는데도 불구하고 조그마한 집을 팔아 결혼 안한 세 동생을 데리고 오빠내외와 살림을 합쳤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날 없다고 불화가 자주 일어났다.
같은 며느리 입장에서 올케언니를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나 노인네들은 빈말일지언정 따뜻한 말 한마디를 얼마나 좋아하시는 줄 올케언니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는가 보다.
친정엄마의 하소연을 들으면 지난 날 시어머님도 내 행동을 무척 섭섭하게 생각하셨을 것 같다.
두 어머님이 며느리를 딸 대하듯 하시면 차라리 마음이라도 편치 않으실까.
우리가 늙으신 부모님의 마음을 전부 헤아릴 수 있을 땐 이미 우리도 늙었을 테니까.
『엄마, 요즈음 시집살이하는 며느리 보았어요?』
『시집살인? 딸이니까 얘기해 보는 게다.』
『모르면 가르치고 언니한테 무어든 마음에 담지 말고 솔직하게 얘기해요. 딸 대하듯이,』
1년 사이 많이 늙으신 친정엄마의 얼굴모습에 시어머님의 모습도 겹쳐진다.
내가 시어머님께 효도하면 친정엄마도 더불어 효도 받으시겠지.

<경기도 안양시 비산동 삼익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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