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전투끝나…남은건 한국프로야구 샅리는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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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3년간 땀에 젖은 유니폼을 벗은지 3개월, 또다른 야구인생을 개척하는 장동(42)은 여전히 바쁘다.
일본TBS방송해설 일간스포니치스포츠지와 주간문춘의 평론가로서 새인생을 걸어가고있다.
올해 방송해설과 평론가로서의 계약금은 7천만엔.
일본 프로야구사상 전인미답의 3천안타의 금자탑을 세운 왕년의 대스타는 이제 그라운드를 내려다보며 방송해설과 평론으로 제2의 야구인생을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특별보좌관직을 맡고있는 그는『모국인 한국에 프로야구가 출범해 더없는 긍지와 자부심을갖고있다』 며 『한국프로야구를위해 마지막 열과 성을 다하겠다』고 말한다.
29일 KBO가 주최한 제1회프로야구세미나에 강사로 나온 장동은 『전쟁에 참전하지 않은자는 전쟁의 공포와 처절함을 모른다』고 전제하고 『프로야구선수는 자신에게 이기고 상태에게 승리하기 위해서는 노력·절제·자신에게 알맞은 기술의 3가지조건을 갖추어야한다』고후배들에게 당부.
재일동포로서 차별과 멸시를 이켜낸 그는 한 인간으로서 위대했고 험난한 프로야구에서도그는 대스타였다.
민족차별의 울분을 배탱으로 풀었고 일본프로야구에서 그 누구도 이루지못한 생애통산 3천안타와 수위타자7번의 기록은「불굴의 한국인 장동」으로 높이 받들어지고 있는것이다.
그래서 그는 일본프로야구 50년사에 진실한 야구선수는 「가와까미」「나가시마」(전요미우리자이언츠감독)「야마우찌」(전롯데감독) 왕정치(현요미우리자이언츠조감독) 그리고 자신등 5명뿐이라고 스스럼없이 말한다.
그의 소년시절의 꿈은 홀륭한 야구선수가 되어 많은 돈을 벌어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는 것이었다.
그러나 4살 때 화상으로 오른손을 크게 다쳐 좌절에 빠졌다. 부상당한 오른손대신 왼손에 배트를 잡았다. 포기하면 훌륭한 선수가되어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을수가 없기때문이었다.
하루 3백∼3백50번의 스윙으로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을 시작했다. 이 스윙은 10번의 스윙을 전심전력을 다해 휘두르고 l분을 쉬고 다시 10번을 스윙하는 그련 배팅연습이었다.
이미 왼손타자가된 그는 이런 연습을 3년간이나 했고 그래서 그는 오늘날 일본프로야구에서 불멸의 스타로 성장, 「안타제조기」「기록의사나이」등의 닉네임을 얻게된 것이다.
신체적결함, 한국인이라는 냉대속에 고난의 길을 걸어온 그는 그래서 한 인간으로서 뿐아니라 야구선수로서 더욱 위대한 인간승리의 표본으로 꼽히는 것이다.
『그라운드에는 명예와 돈이 산더미같이 쌍여있다. 꿈과 용기를 갖고 피나는 노력을 하는자만이 이를 차지할수 있다) 인간수양을 위해 4개월전부터 골프 (핸디20)를 시작한 장동은『한국·일본·미국이 명실상부한 월드시리즈를 가져 한국이 우승하는 그날이 하루빨리오도록 선수들은 사명감을 가져야한다』며 후배들을 격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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